나는 웬만해서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내 일이다보니 치마보다 바지를 많이 입고 하이힐보다 운동화를 신게 된다. 체험 학습을 가거나 근처 놀이터에 갈 때도 운동화는 필수다.

편안함과 직업상(어린이집 교사)의 이유로 하이힐을 신지 않는 까닭도 있지만, 발바닥 가운데 부분이 오목하지 않고 평평한 발, 내 발이 평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만 걷거나 뛰었다 싶으면 쉬이 피곤해 진다. 발목이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 무리가 와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 불편함은 상구혈(복사뼈의 앞쪽 움푹 파인 곳)이나 금문혈(복사뼈 뒤쪽 아래 우묵한 곳) 쪽에 통증으로 나타난다. 언젠가 꼭 신어야 할 경우가 생겨서 하이힐 한 켤레를 샀다. 하루 종일 절뚝거리며 다녀야 했다, 하이힐을 살 때의 부풀었던 마음은 신지 못하는 하이힐과 함께 신발장에 잘 쟁여 놓아야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마스크, 청바지에 운동화, 가방을 둘러멘 채 출근 준비를 한다. 코로나 영향도 있었지만 평소 나의 차림새이다. 그런 내 차림새가 아버지 눈엔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아니면 서운했던 건지, “야야, 구두 좀 신고 가지.”

뜬금없이 한 마디를 툭하니 내뱉으셨다. 다른 아가씨들처럼 원피스에 하이힐도 신고 예쁘게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당신의 푸념이었을 테다. 신발장에 갇혀 세상 구경 못한 하이힐마저 또각또각 푸념을 내뱉는 것 같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건성으로 대답을 한 뒤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

매일 같이 운동화만 신고 다녔던 탓일까, 요즘 들어 이상하게 운동화 끈이 자주 풀렸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 때도, 녀석(강아지 달이)과 산책을 할 때도,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심지어 버스에 오를 때도 운동화 끈이 스르르 풀려 버리는 바람에 난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에 예닐곱 번은 아무 이유 없이 운동화 끈이 풀리는 것이다. 끈이 풀린 지도 모르고 길을 걷다,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저기…’라는 말에 나는 ‘아차’하고 그제야 밭 밑을 내려다보고는 운동화 끈을 묶었다.

2020년, 달력을 한 장 남겨둔 이 시점에, 왜 운동화 끈이 자주 풀리는 것일까?

어릴 적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블레즈 파스칼의 명언을 내 나름의 좌우명으로 생각했다.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좋았다. 거기에 ‘용기 있는 자만이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나 더 붙였다. 생각은 하되, 어떤 난관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꿈을 향해 걸어가는 용감한 어른이 되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8자 놀이, 얼음 땡 같은 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 때 나는 놀기를 포기하고 책을 읽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용감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 그 꿈이 지금은 많이 퇴색해 버렸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세상 풍파에 갈대처럼 흔들리기만 하여 허송세월을 한 듯하니 말이다.‘용기 있는 자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수없이 되새기던 내 입이 무색해 질 정도다. 등단하고도 제대로 글을 써보기라도 했는지 생각해 본다. 겨우 두 편의 소설을 써서 발표했고 부족한 필력임에도 칼럼을 쓰고 있다.

운동화 끈이 여러 번, 그것도 무단히 풀리는 것이 마치 퇴색해 버린 내 마음, 속절없이 풀려버린 내 마음 같아 씁쓸하다. 가끔은 끈이 풀린 것도 모른 채 길을 걸을 수 있다. 또, 그렇게 풀린 채로 모든 걸 내버려두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끈을 다시 묶는다. 어렵고 힘든 날들을 견뎌 내기 위함만은 아니다. 내가 나아가야 할 긴 인생의 길 위에서 풀리고 흐트러진 내 결심을 묶는 것은 아닐까.

예쁜 유리 구두가 아니더라도, 하이힐이 아닌 운동화 일지라도, 오늘도 운동화를 신는다. “야야, 끈 단디 묶어라.” 꿈을 향해 씩씩하게 땅을 내딛는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