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 해를 돌아보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또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지나갔다. 어쩐지 제대로 일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한데, 이런 시기에도 성탄절이 찾아올까?

성탄절 곧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에서 온 말로 기독교의 축일이자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명절은 336년 경 로마에서 성탄절 축제가 열리면서 전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지정한 콘스탄틴 1세와 깊이 관련돼 있다.

로마제국에서는 디아클레티아누스 황제 사후 왕권을 노리는 경쟁자 사이에 격렬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콘스탄틴은 숙적이었던 막센티우스와 결전을 하루 앞두고 정오의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를 보았고, 방패에 그 십자가를 그려넣고 승전했다고 한다(312년). 이 사건은 콘스탄틴이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얻어 경쟁자를 물리치고 로마 황제로 등극했다는 뜻이었고, 그 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그 때까지 박해하던 기독교를 허용하기에 이른다(313년). 그렇다면 성탄절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가종교로 다시 태어나는 축제였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전통종교를 가졌던 로마는 추수가 모두 끝난 뒤 12월 24일부터 다음 해 1월 6일까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을 축하했는데, 태양이 다시 힘을 얻어서 낮이 길어지는 동지를 기념하는 축제였다. 그렇다면 예수를 ‘세상의 빛’이라고 규정했던 고대인이 이 날을 예수가 탄생한 날로 짐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예수가 탄생한 날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교도에 대항해 기독교가 승리했음을 축하하는 의미가 컸을 것이다.

예수는 유대인이었고 그를 따르는 제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집단은 로마 제국 안에서 소수 민족의 지역종교 전통을 형성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종교가 제국 전역에 퍼지면서 결국 국가종교가 되었고, 성탄절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관습과 어울리도록 적응해나간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서 유대 종교 전통에 비춰 보면 성탄절은 이질적인 명절이다. 태양이나 비바람과 같은 자연계의 힘과 능력을 신으로 섬겼던 고대 서아시아 문명에 비해 유대 종교 전통은 특정한 가족집단과 동행하던 신, 그리고 압제받던 나라에서 탈출해 독립할 수 있게 도와준 역사적인 신을 섬겼다.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 신이 역사에 개입해 구원을 베풀었던 일을 기념하는 명절을 기억하고 축하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을 그린 신약성서에도 그의 탄생을 종교적 명절로 지켰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성취했던 구세주가 세상에 찾아온 일은 축하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와 그의 제자는 그가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성탄절은 예수를 섬기는 전통을 로마라는 밭에 심으면서 돋아난 변화의 증거인 셈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새롭게 적응하며 첨가했던 성탄절 관습도 있을까? 한국교회가 성탄절에 토착화된 축하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하나 남아있는데, 1898년 강화 교산교회에서 신도들이 성탄절을 축하할 때 불교에서 석탄일에 행하던 연등 행사와 유사하게 태극등 37개를 달고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 때 37이라는 숫자는 당시 고종 황제의 나이를 상징했다고 하며, 일본제국 치하에서 활동하던 교회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특히 개신교회는 전통적인 종교를 모두 우상숭배로 간주하고 전통 단절을 기본정책으로 삼았다. 가톨릭 교회는 제사를 허용하지만 개신교회는 죽은 자에게 절하는 예식이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 추모예배로 대체하며, 이런 문제는 아직도 가족 사이에 분쟁의 불씨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독교만의 성탄절 예식을 개발하기보다는 서양교회의 관습을 답습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 심각하게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성탄절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누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비대면 문화가 기본적인 질서가 되고, 강제로 제도권 종교가 신도들로부터 멀어진 상황에서 성탄절을 맞으려면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사회관계망을 통한 비대면 문화는 감각의 마비나 분열을 초래하고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알려져 있고, 우리는 온라인 인간관계의 부작용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그렇다면 성탄절 축하를 준비하는 측이 비대면으로 모인 사람들을 내부적인 행사 관람에 묶어두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들이나 극빈층 어린이나 환자들과 클릭 한 번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면 어떨까? 한국식 인정이 넘치는 성탄절을 꿈꿔본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