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사랑한 여자, 경자(庚子年) 씨가 지구에서 보내는 마지막 달이다. 끈질기고 위험한 바이러스의 애인 경자 씨, 식을 줄 모르는 스캔들을 몰고 다닌다. 경자 씨와 일구(코로나19) 씨의 랑데부 동선이 공개된다. 성실한 보건당국이 보내는 재난경보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사이렌을 울리며 경자 씨 사생활을 까발린다. 경자 씨의 시간과 공간이 큐알코드로 등록된다. 마스크로 얼굴을 숨기고 입을 막는 부적절한 행동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비난이 파다하다. 빅브라더에게 감시당하는 것 같은 불쾌감을 준다는 비난의 화살도 경자 씨 몫.
사실 경자 씨는 억울하다.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 하는 이 세계적 스캔들은 실은 스토커 일구 씨의 일방적인 맹목이 저지른 3차 세계전쟁에 준하는 대인간 폭력사건이다. 코로나 일구 씨가 이렇게 끈질기고 파괴적일 줄이야. 그와 접촉한 경제, 사회, 무역, 교육이 내파되었다. 초봄에 추근대며 구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정체를 모르는 스파이의 짧은 썸 타기 에피소드로 끝날 줄 알았다. 확진, 감염, 숙주, 음압, 우울, 격리. 일 년 내내 공포의 일구 씨가 따라다니며 매달린 경자 씨, 연분홍 치맛자락이 얼룩졌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자유롭게 방랑자로 흐르던 노마드 경자 씨, 한 해 체류 일정으로 육십 년 만에 지구를 방문한 경자 씨, 벼르고 별러 찾아온 지구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이런 개고생이 기다릴 줄이야. 경자 씨의 이번 지구여행은 망했다. 강변 유채밭 활짝 꽃 핀 샛노란 봄이 파헤쳐지고, 예정된 만남과 소풍과 여행과 휴가의 여름이 실종되었다. 학교와 광장과 강당이 폐쇄되고, 춤과 노래와 축제가 금지되었다. 아름다운 지구 곳곳을 방문하며 슬기로운 지구생활을 즐겨보지도 못하고, 환한 미소와 친절한 함박웃음을 경험하지도 못하고, 경자 씨 피난민처럼 자가격리 하다가 떠나야 할 판이다.
경자 씨는 코로나 세계침공 스캔들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세계를 역병과의 전쟁터화한 전범으로 코로나 일구 씨를 재판에 회부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날마다 뉴스에 나와 아옹다옹 하는 시끄러운 법률가들은 뭐하느라고 바이러스 일구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작은 유리병 봉쇄감옥에 가두어, 시베리아 동토 만년설 밑에 묻어버리는 판결 안 내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일상이 망가진 희생양 경자 씨, 선도 악도 아닌 경자 씨. 남은 체류기간은 한 달. 떠날 날이 가까워올수록 아쉬운 경자 씨, 그 사이 경자 씨는 정체를 숨기고 암약하는 질 나쁜 스파이, 사악한 사이코패스 바이러스의 애인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경자 씨는 요즘 목하 고민중이다. 바이러스 군대의 적장 코로나 일구 씨를 깍지 껴안고 물살 거친 강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 더 붉은 경자 씨 마음 흘러라. 수주 선생이 살아오시면 경자 씨를 논개에 비유하는 궁색한 키보드 전사를 용서하시기를. 경자 씨가 떠나고 새해가 왔을 때, 부디 미스터 코로나, 일구 씨도 흔적 없기 바란다. 경자 씨가 바이러스의 식민지가 된 세계를 구하는 어벤저스이기를.
사실 코로나 일구 씨야 말로 법이 총력을 다해 도모해야할 개혁의 대상이다. 안타깝게도 바이러스 일구 씨를 체포하고 무력화 하는 것은 법의 능력 바깥의 일인 모양이다. 일설의 가짜뉴스에 의하면 일구 씨는 가이아 지구가 보낸 외교사절이라 한다. 법도 정치도 자본도 인간도 좀 더 겸손해져야한다는 대모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 헤르메스라 한다. 지구와 환경을 정말 소중히 여기겠노라 답장을 들려줄테니 부디 경자 씨와 함께 떠나기 바란다. 지금 일구 씨 기세로 보아 경자 씨가 떠난 후에도 한동안 지구총독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마마와 홍역을 손님이라 칭하던 옛사람의 지혜는 이따금 대문에 금줄을 친다. 외부와 접촉을 피한다. 당분간 모든 사이에 금줄 친 소도가 필요한 시절이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있는 집처럼 언행과 출입을 삼간다. 보고 싶은 마음 가고 싶은 마음 참고, 펼친 일 거두어들인다. 바깥 대신 안으로, 멀리 대신 깊이 떠나는 시절이다. 경자 씨를 배웅한다. 잘 가요 경자 씨, 육십 년 후 다시 만나요. 그 때는 마스크 벗고 악수도 할 수 있기 바래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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