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지난 일주일 넘게 온갖 신문과 방송은 미국 대선의 향배를 두고 도배가 됐다. 저 먼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이 나라의 남북 관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리라. 특히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남북 관계가 달라지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신념 체계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릴 적 땅콩농장주의 아들(지미 카터)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감동적인 순간’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적이 있다. 미국 남부의 한 무명정치인이 홀연히 등장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결국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한 동방의 작은 나라에 사는 어린 내가 알 수 있었던 까닭은 다 텔레비전 때문이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남북관계에 획기적 변화가 올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로 여섯 명의 대통령이 8년 주기로 바뀌면서(조지 부시 1세만 4년 만에 퇴임했다) 44년이 흘렀다. 그런데 여전히 남북 관계는 별로 변한 게 없다.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전문가’들은 남북관계를 예측하면서 희망과 우려의 전망을 내놓았지만 실질적으로 남북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에 남북 주도의 주체적 노력과 결단으로 상호 교류가 비약적으로 활성화되긴 했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민주당 정권을 잡든 공화당이 정권을 잡든 남북관계는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다.

위험한 혹은 억측의 발상일 수 있겠지만, 나는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 들여다보자. 미국은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4년마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 실질적 양당제 국가다.

그러니까 미국은 지난 200여 년 동안 민주당과 공화당 낸 후보 외의 대통령을 뽑은 적이 없는 국가다. 그들의 선거 이벤트는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상징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이 민주와 공화의 깃발 아래서 권력을 안정적으로, 대개 8년을 주기로 나누어 가지는 양당독재국가인 셈이다.

다만 형식적으로 4년마다 선거 이벤트를 통해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격렬하게 대립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외양을 보여주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민주당 아니면 공화당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흑백의, 일도양단의 이분법으로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는 제도가 과연 민주주의일까. 지난 대선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샌더스(소수 의견)는 과연 어디로 갔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군산복합체, 자동차, 거대곡물기업 등의 자본가를 대변하는 양당이 선거라는 격렬한 이벤트를 통해 8년(4+4) 주기로 사이좋게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양당 독재, 결국은 ‘자본가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진보의 가치를 내세운 민주당의 클린턴과 오바마 재임 시절 16년 간 미국은 더 많은 전쟁을 수행했고, 한반도의 긴장 역시 완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재임기간 동안 미국 민중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바이든 시대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상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힘에 바탕을 둔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대선결과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국제 질서는 미국 주도의 세계에서 중국, 유럽연합, 러시아, 그리고 제 3세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변화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75년 동안 미국에 의지한(종속된) 남북관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미국 대선 결과에 목맬 일이 아니라 좀 더 주체적인 남북관계를 전망하고 기획해야 할 때다.

그 주체적 움직임을 미국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질서는 이미 변했고,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먼 데는 가끔만 바라볼 일이다.

작가·헤세이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