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2월 국회는 여야 합의로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 요지는 검찰총장이 퇴직 2년 이내에는 공직에 임명되거나 정당 당원이 될 수 없도록 한 것. 얼핏 봐도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 자유, 참정권 등의 침해가 제기될 만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모처럼 의기투합해 이를 밀어붙였던 이유는 검찰, 특히 그 수장인 검찰총장을 둘러싼 정치적 시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 당시만 해도 검찰총장을 지낸 뒤 장관으로 영전하는 게 관례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1995년까지 검찰총장 26명 중 12명이 법무부 장관, 1명이 내무부 장관이 됐다. 장관 직행 확률이 절반인 만큼, 검찰총장 누구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엔 권력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야당은 검찰총장이 마지막 공직이 돼야 검찰 중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꿈쩍도 하지 않던 집권당이 태도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그해 4월 15대 총선에서 두 명의 전직 검찰총장이 여당 공천으로 당선된 데 대한 비판 여론이었다. 총장과 장관을 거친 김기춘 의원은 1992년 대선 때 지역감정을 부추긴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 주인공. 또 직전 총장이었던 김도언 의원은 퇴임 며칠 뒤 여당에 입당해 검찰 내부에서조차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찰중립의 새로운 이정표로 보였던 퇴임 총장 공직 제한은 불과 7개월 사이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헌법재판소가 당시 김기수 총장을 비롯한 고위직 검사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 유일하게 합헌 의견을 낸 조승형 헌재 재판관은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행위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로 국민일반에게 인식’돼온 점을 들어 불가피성을 펼쳤으나 역부족이었다. 개정안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 파장은 만만찮았다. 이후 단 한 명(김태정 장관)의 예외를 제외하곤, 검찰총장직이 사실상 마지막 공직이 된 것이다.

이제 이 공식이 큰 위협에 직면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향후 거취를 놓고 정치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추미애 장관의 잇단 수사 지휘권 발동을 직격한 윤 총장의 지난 22일 국감장 발언은 가히 핵폭탄급 후폭풍을 몰고 왔다. 여당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발끈했다. 야당은 “정치하겠다는 뜻이냐”며 미소를 머금었다. 정작 그는 “임기를 지켜 소임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일단 정치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러나 여진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권부와의 정면 충돌, 중도 퇴진 가능성에다 급기야 차기 대권 도전 시나리오까지 온갖 소문과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국민 불안과 피해만 커질 뿐이다. 그래서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고 한 박순철 전 서울 남부지검장 말부터 여권이 새겨들어야 한다. 검사 향응, 야당 유력인사 수사 뭉개기 등 피의자 폭로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휘권이 발동됐다. 권력에 밉보인 윤 총장 ‘저격’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장관의 지휘권은 ‘양날의 칼’이다. 무소불위 검찰권의 자의적 행사를 제어하기 위한 선출권력의 민주적 통제장치로서 분명 긍정적 측면이 있다. 반면 절제와 합리, 균형을 잃은 채 마구 휘두르면 검찰은 또다시 정권의 충견(忠犬)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편 윤 총장은 먼저 솔직해져야 한다. 국감장에서 드러낸 결기는 정치적 의지였다. 그렇다면 ‘봉사’라는 말속에 숨어 정치 근육을 키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당장이라도 직을 던진 뒤 정치 현장으로 나서는 게 맞다. 그게 사람보다 그가 더 충성한다는 검찰 조직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장관 지휘권 발동 적법성 여부를 쟁송을 통해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다투면 법무·검찰 조직이 혼란스러워지고 피해가 국민에 간다”는 말은 자가당착이다. 오히려 국감장에서 위법이라고 스스로 단정한 행위가 더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23년 전 헌재로 달려간 선배 총장은 자기 ‘밥그릇’을 위해서였다. 반면 이번 사안에 대한 헌재의 권한쟁의 심판은 검찰, 나아가 나라를 위해서다.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민주적 통제 허울을 쓴 권력의 검찰 장악 의도를 막을 수 있다. 아울러 정치적 중립을 핑계로 한 검찰권의 일탈도 제어하는 묘수를 찾을 수 있다.

부산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