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의 ‘예쁜 맘 예쁜 꿈’을 배경음악으로 멘트가 흐른다. “당신의 아이가 넋 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구구단보다 공룡 이름을 더 잘 외우고… 국영수에 관심 없다고 혼내는 대신 그 호기심을 키워주세요….“ 잔잔한 울림이 있다.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고 호소하는 어느 기업의 공익광고 캠페인이다. 과학을 돌려주자는 말은 자연과 친하게 해주자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하고 자연은 인간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후 38억 년에 걸친 기간, 현재 인간이 직면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더 큰 규모의 환경문제를 경험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일부 실패한 종은 멸종하였고 살아남은 개개의 생명체는 그 자체가 각종 환경적 재앙을 극복한 해답이다. 이들이 지니는 구조와 만드는 물질, 이들이 협력하고 공생하는 조직은 우리 인간이 배워야 할 것들이다.
특히 지구상에서 무게로 가장 성공한 식물계와 숫자로 성공한 곤충계가 서로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곤충들은 꽃가루를 옮겨주고 꽃은 꿀을 제공한다. 자연계에서 최고의 성공사례는 서로 먹고 먹히는 것이 아니라 손잡고 함께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공존이다.
한편, 자연은 적은 양의 에너지로 물질을 생산하면서도 인간보다 월등한 제품을 만든다.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질기며 인간이 만든 어떤 고무나 섬유 제품보다 유연성이 크다.
홍합은 거친 파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강력 접착제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바윗돌에 고정시키는데, 홍합 하나는 125㎏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그것도 고온의 열처리 과정 없이 공해물질도 배출하지 않고 상온에서 만들어 낸다. 동물은 인간처럼 자연을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신의 존재에 의하여 물질을 만들거나 변화를 일으킨다. 순응이다.
2년 전, 캐나다 최대 음악 축제 중의 하나인 ‘오타와 블루스페스트(Bluesfest)’가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축제의 주 무대가 들어설 곳의 바닥에 물떼새 어미가 알 4개가 든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축제 준비위는 무대 설치 작업을 미루고 철새 전문가의 지휘 속에 둥지 이전 작업에 들어갔다. 둥지가 사람의 손길을 타면 야생 조류는 둥지와 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길바닥 둥지를 정밀 촬영해 똑같은 둥지를 만들고 알을 옮겨 넣었다.
그러고는 20분 간격으로 1ｍ씩, 어미 새가 둥지로 날아오는지를 확인하면서, 30ｍ 떨어진 곳까지 노심초사 둥지를 옮겼다.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보여준 우리 인간의 아름다운 몸짓이다. 과학 교육의 이유다. 과학 교육은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는 것은, 그리고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자연과 함께 공존하면서 자연의 공존과 순응의 지혜를 배워 지속 가능한 삶을 이루자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가던 어느 날 해 질 녘, 보름달을 쳐다보며 6살 된 아들이 묻는다. ‘아빠, 달이 집에 안 가고 왜 자꾸 나를 따라와?’ 난감한 순간이었다. ‘따라오는 게 아니고 달이 너무 멀리 있어서 우리가 달려도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단다’는 대답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였다. ‘달이 너를 좋아하니까!’ 지금 생각해도 명답이다. 얼마 전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버지, 애들과 함께 방울토마토를 키웠습니다. 꽃이 지는 듯하더니 열매를 맺고 연약한 것 같았지만 점점 자라 달고 맛있는 토마토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이 토마토를 닮았습니다.’ 이제껏 인간이 성취하고 창조한 모든 것의 뿌리는 자연의 시(詩)와 사랑의 강 속에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생명이 없는 스마트폰을 매일 들여다보는 우리 아이들, 꽃과 나비와 별의 변화에 대한 추억을 나눌 수 없다면 친구에게 무슨 이야기로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을까? 과연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교육인·전 부산영재교육진흥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