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올해 추석 캠페인이다. 늘 “가족과 함께하는 풍성한”으로 시작하던 명절 인사말이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 지난해 12월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접수된 코로나19가 만 9개 월만인 올해 9월 27일까지 100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탓이다. 말 그대로 전쟁에 버금가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확진 판정을 받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어느 누구도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백악관마저 뚫리자 전문가들은 “백신이 보급되기 전까지 전 세계 사망자가 2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의 우울한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백신이 나오면 우리는 예전의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세계 최고의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지난 8월 6일 ‘팬데믹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코로나19 특집기사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네이처가 올해 발표된 17편을 포함해 총 18편의 논문을 분석해 내놓은 시나리오는 ‘① 코로나19는 우리 곁에 계속 있을 것이며 ② 날씨가 추워지면 감염자가 더 증가할 수 있다’로 압축된다. 역학 전문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우울한 전망이었다. 또한 백신이 개발되어도 백신의 면역력 지속기간이 40주 이내라면 코로나19의 감염은 매년 유행하는 풍토병(엔데믹)으로 바뀌게 되어 전세계 감염자가 2025년까지 해마다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도 포함되어 있다. 손씻기·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개인의 행동 변화가 지속적으로 코로나19의 확산세를 막아내고 있다는 희소식도 포함되어 있으나 우리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는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위드(With)코로나’ 시대에 과학기술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코로나19로 높아진 실업률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산업기술과 신성장동력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뿐일까. 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피폐해지고 있는 정신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다가온 미래’라고도 불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비대면·분산사회로 급격히 진입하면서 접촉과 교류를 통해 발전해 온 기존 시스템에 큰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를 만든 가장 큰 욕구인 접촉과 교류를 동반한 활동량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육체건강 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불안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소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로 불리는 정신건강 이상 현상이다.

실제로 한 취업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기간에는 응답자의 71.6%가 우울감을 경험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에 따라 우울감도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올해 상반기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접수된 청소년의 컴퓨터·인터넷 중독과 가족 문제 상담 건수 역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내용별로는 ‘정신건강’ 상담이 6만3046건으로 가장 많은 29.2%를 차지했다. 온라인 수업과 외부활동 감소로 장시간 집에 머물게 되면서 가정 불안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심리적 불안으로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정신건강의 악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져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는 사회의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릴 가능성 높다. 또한 치유와 회복의 시기를 놓치면 국가 경쟁력의 저하 뿐 아니라 무기력 사회에 빠지는 등 회복을 위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국민의 마음과 사회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공학자들이 이를 기술로 구현하는 ‘따뜻한 기술’ 개발에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정부는 당장의 경제적 가치에만 매몰되지 말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기술개발에 투자를 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산산업과학혁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