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 년간 지질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해왔지만,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분야는 암석의 나이를 측정하는 지구연대학(geochronology)이다. 보통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맨 처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이일 것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지, 적은 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암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암석의 연대를 아는 것은 지질학에서 가장 중요하며 기본적인 사항이다. 과거에는 주로 퇴적암에 포함되어 있는 화석을 이용하여 대략적인 지질시대를 추정했지만, 다양한 분석기술이 개발된 이후에는 주로 화성암의 절대연령을 측정해 암석의 연대를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흥미롭게도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종교계에서 먼저 언급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아일랜드의 대주교인 제임스 어셔는 성경을 근거로 지구가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저녁에 태어났다고 계산하였고, 이 연대는 1701년 발간된 킹제임스판 성경 개정판에 인용되었다. 즉, 지구의 나이를 약 6000년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유럽에서 계몽주의가 퍼지면서 젊은 지구에 대한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의 드마이예를 시작으로 지구의 나이에 대한 새로운 주장들도 제기됐다. 프랑스의 뷔퐁 백작은 지구가 뜨거웠던 상태에서 식는 속도를 계산하여 지구의 나이는 7만5000년보다 오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절대온도로 유명한 켈빈 경은 지구의 나이를 2000만 년에서 4억 년 사이로 추정했다.

그 밖에도 바다의 염분이나 지층의 퇴적속도를 이용한 새로운 계산 값들이 제시되었지만, 실제로 과학적인 연대측정은 방사능의 발견과 함께 시작되었다. 1895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고 1896년 베크렐이 우라늄을 포함한 광물에서도 X-선과 유사한 선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의 근거를 마련한 사람은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러더퍼드이다. 그는 방사성원소는 외부의 온도·압력 변화에 관계없이 일정한 속도로 붕괴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를 이용하여 암석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그 후 암석의 연대측정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학자는 영국의 아서 홈즈이다. 그가 측정한 각 지질시대의 연대는 현재 알려진 것과 차이가 크지 않다.

다시 화두로 돌아가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구의 나이를 처음으로 정확히 측정한 사람은 지구화학자인 클레어 패터슨이다. 패터슨은 당시 연대측정에서 난제였던 납의 오염문제와 원시조성 문제를 해결하고 1956년 지구의 나이가 45억5000만 년±7000만 년이라고 보고했다. 이 연대는 약 5만 년 전 애리조나에 충돌한 캐년디아블로 운석을 이용하여 측정한 값이다. 이 운석은 우라늄을 거의 함유하지 않아 방사성 붕괴로 생성된 납의 오염을 무시할 수 있었다. 그 후 달에서 가지고 온 월석의 연대측정 결과가 운석의 연대와 유사하게 밝혀짐에 따라 지구의 나이에 대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7세기 중반 6000년에서 출발한 지구의 나이가 300여 년이 지난 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밝혀진 것이다. 패터슨 이후 60여 년간 새로운 분석장비들이 개발되면서 많은 연대측정이 이루어졌으나 오차만 줄였을 뿐 놀랍게도 이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지질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제임스 허튼은 지구의 역사에 대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질학적 과정들이 매우 느리게 일어나며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관찰에 기반한 ‘동일과정설’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랜 노력을 통해 허튼이 알지 못했던 지구의 시작을 규명했지만, 지구의 종말은 예측할 수 없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지구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생명체는 인간이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가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조금이나마 줄여나간다면 아름다운 지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임현수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