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지만, 한때 내 전공이 ‘교정’이었다. 쪼잔한 성격만큼 글을 좀 꼼꼼히 읽는 편이다. 오탈자도 바로 골라낸다. 그런 나지만 카카오톡 따위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 상대의 반응이 의외여서 내가 보낸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아하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또 한편 왜 이런 글을 보냈을까 의아해서 재차 읽어보면 내가 잘못 읽은 경우다.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할 때는 말 말고도 표정이나 여러 정황을 엮어 종합해서 파악하지만, 글만으로 한정되면 오류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페이스북에 내가 올린 ‘생각’에 달린 댓글만 몇 개 읽어봐도 우리가 얼마나 제각각 제멋대로 읽고 판단하는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생각을 오롯이 다른 이에게 전하고 나누기란 대단히 어렵다.

회의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대부분 제가 할 말만 신경쓰느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기관은 닫고 있는 경우가 많다. 회의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의견을 가리고 모아서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진화해 나아가야 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 불쑥불쑥 수시로 무책임하게 내뱉게 되면 최선의 결말을 얻을 수 없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일이 먼저다. 그런데도 다들 분주히 제 말만 허공에 날리고 있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으라 했다. 책은 조리 있게 잘 쓴 남의 글이다. 마찬가지다. 내가 올바른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분별 있게 이해하여야 한다.

또 남이 하는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면 조금 더 의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내 뜻을 전하려면 그보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올바로 알아듣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개떡같이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 했다. 제 말만 하지 않고 남의 말을 헤아려 듣는 자세의 정도가 그 사람의 인격이고 품위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말을 옮기게 되면 더 큰 오류가 생길 여지가 증폭된다. 에스엔에스상으로 퍼 나르는 정보들은 그걸 가려 보는 능력이 부족할 때 우리를 팔랑귀를 가진 괴물로 만든다. 그런데도 다들 너무 가볍게 부화뇌동한다.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난리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세상의 불공정은 계급사회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잉태된 괴물이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역사와 깊이를 가진 병폐다. 과거에는 이 계급과 불공정마저도 당연한 듯 수용하고 순응해 왔지만 이제야 진정한 민주사회로 한 발 나아가면서 비로소 적폐라 찍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다들 남의 불공정에 대해 분노할 뿐이지 자신이 저지른 불공정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지나 않은지. 내가 저지른 불공정은 바로 내가 입은 혜택의 다른 말이다.

여태 살아오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들과 맞닥뜨렸을 때 좀 더 편하고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끈을 대고 부탁해 처리한 적이 없었는가? 크건 작건 말이다. 그게 과연 공정한 행사였다고 자신하는가? 누구든 나처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장담하는가?

불공정의 크기를 놓고 따져서는 안 된다. 상대가 저지른 불공정은 크고 내가 저지른 불공정은 하찮은 것인가? 그래서 분노하는가? 부끄럽게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크기만 다를 뿐 너나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럼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불공정을 자행해 오지 않았는가. 나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 한편에서 같이 뛰고 굴리고 있지나 않았는가 말이다. 이걸 고쳐야 한다. 나부터 바꾸지 않고서는 공정한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약삭빠르게 사는 걸 개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의 불공정에 입을 대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당신보다 훨씬 더 약게 살 뿐이고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이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불공정에 대해 분개하고자 한다면 나부터 돌아봄이 마땅하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부터 크고 작은 꼼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나만의 이득에 마음이 동해서도 안 된다. 내 주위에 조금 늦게 어렵게 걷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낮추고 내 입은 닫고 남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