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비싸서 죄송합니다 /김이듬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8-27 19:25:50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모처럼 친구가 와서 몸보신할 겸 국밥 먹으러 왔다. 로즈마리 얹은 두툼한 스테이크에 후추 뿌려서 썰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순대국밥 가격도 올랐다. 500원 상승한 9000원, 시집 가격과 같다.

올여름에도 좋은 시집들이 많이 나왔다. 그중에 책방에서 꽤 팔린 시집 두어 권 찾아봤다. 안희연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은 “삶의 바닥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슬픔을 헤아리는” 시집이다.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극심한 관절 통증으로 방문 손잡이마저 돌리기 어려웠던 시기를 겪으며 6년 만에 낸 시집이다. 그에게 시 쓰기란 “자기의 존재를 거는 모험이자 그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이달 초, 책방이듬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초대작가는 류성훈이었는데 시집 ‘보이저 1호에게’는 그가 8년간 쓴 작품들을 차곡차곡 모은 첫 시집이었다. “아득한 우주 공간을 홀로 여행하는 심정으로 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처럼 시인들은 삶의 비의를 응시하며 자기 존재를 걸고 철저히 고독하게 창작한다. 오랜 사투를 거쳐 어렵사리 출간한 시집의 가격은 1만 원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집을 즐겨 찾지 않는다. 그 까닭은 시인에게도 있고 독자에게도 있다. 아니면 시집이 너무 비싸서 그런 걸까?

며칠 전, 한 온라인서점이었다. “기다렸던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 시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택배비 무료와 이 가격으로 읽는다는 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시집을 구매한 독자가 남긴 댓글이었다. 더듬거리는 짧고 강렬한 문장을 통해 다시 나는 느꼈다. ‘시집이 비싸서 사지 않는 건 아니구나!’라고.

알다시피 온라인서점은 10% 가격 할인에 5% 마일리지를 적립해준다. 거기다 무료 배송까지.

동네책방에서는 그럴 형편이 못 된다. 대형서점에 비해 책을 공급받는 정가 대비 비율이 높고 반품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작은 서점인 책방이듬이 그나마 버텨갈 수 있는 건 총 15%의 할인금액을 포기하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책방까지 와서 책을 사가는 이웃들과 지인들 덕분이다. 골목에 책 파는 독특한 문화공간 하나쯤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시킨 일이리라.

그런데 다시 ‘도서정가제’를 없애자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도서정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온 이후,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며 도서정가제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가격 부담 때문에 책을 멀리하게 됐으니 책도 다른 물건들처럼 유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2014년 이전처럼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대형 출판사나 대형서점들은 유리한 환경에서 사업을 펼칠 것이다. 그들은 각종 이벤트를 통해 재고도서들을 팔아치울 것이다. 깜짝 놀랄만한 할인율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마치 ‘1+1’ 초콜릿 사듯 4캔 1만 원짜리 맥주를 집어 들듯 책을 사들일까? 그리하여 책 생태계가 살아나서 다들 독서하는 국민이 될까? 국민의 도서 구입비가 꾸준히 올라갈까? 도서정가제가 폐지되어 버틸 수 없게 된 동네책방들이 하나둘 사라진 이후의 풍경은 그토록 아름다울까?

물가를 비교할 때 국내 책값은 그렇게 흥분할 정도로 비싼 게 아니다. 내가 쓴 책을 비교해보겠다. 시집 ‘히스테리아』는 정가가 9000원이다. 그런데 번역본인 ‘HYSTERIA’는 미국 온라인서점 아마존에서 18달러에 팔리고 또 다른 시집 ‘명랑하라 팜므 파탈’의 영역본 ‘Cheer Up, Femme fatale’은 거기서 16달러에 팔리고 있다. 한국보다 2배 정도 높은 가격이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책은 잘 팔리지야 않겠지만.

3년간 동네책방을 지켜온 경험을 통해 난 말할 수 있다. 돈 없어서 정말로 사고 싶은 책을 못 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돈 자랑하는 손님에게 책 사는 데 인색한 이유를 물어본 적 있다. 진짜 궁금했다.

부동산 투자, 주식으로 부자가 된 이들은 베스트셀러 실용서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모발이식하는 데 1000만 원 이상 썼다면서 책을 비싸다고 꺼린다. 이사할 때 성가시다고 한다. 솔직히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오프라인서점보다 인터넷서점이 경제적이라고 말한다. 책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실용적이라고 말한다. 나는 상처 받았지만, 가치관과 취향의 문제니까 입을 다물었다.

김민정의 시집 중에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 있다. 그 제목처럼 문학은 효용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소용없고 쓸모없는 상품일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는 돈으로 측량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있다. 사람이 만든 모든 공산품 중에서 책값이 가장 저렴하지 않나? 이토록 아름다운 창조물인 책이 적정 가격에 정가로 유통되어야 저자와 독자, 서점과 도서관뿐만 아니라 지구가 공감과 공존으로 자연스레 숨을 쉰다.

시인·책방이듬 대표·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이대호·롯데 FA 평행선…4번 타자 재계약 소식은 언제
  2. 2‘가덕신공항 폄훼’ 김종인·주호영에 직격탄…야당 부산시장 보선후보들 반기
  3. 3부산시민 52% “버스 안 탄다”…가장 큰 불만 ‘긴 배차 간격’
  4. 4정의당 김종철 대표, 장혜영 의원 성추행…초유의 불명예 퇴진
  5. 5공사 중단 양산 다인로얄(4·5차 505세대, 물금 주상복합건물) 허가 전격 취소
  6. 6리베이트·업체 특혜 의혹 솔솔…경찰, 트램파크 내사 착수
  7. 7신입생 기근…대학·市·교육청 ‘트리플 전략 ’ 세워야
  8. 8‘지반 침하’ 부전~마산 복선철 조사단 확대
  9. 9“고리 3·4호도 수명연장 검토”…한수원, 탈원전 정책 역주행
  10. 10오늘의 운세- 2021년 1월 26일(음력 12월 14일)
  1. 1김영춘 “朴 행정경험 없다” 인터뷰에 박형준 “명백한 허위사실 엄중 경고”
  2. 2야당 일부 예비후보 ‘송곳 질문’에 진땀…경선룰 쓴소리도
  3. 3야당 “박범계 까도 까도 비리” 여당 “결격사유 없다”
  4. 4[김경국의 정치 톺아보기] 내년 대선 가늠자 될 보선…여야 ‘PK민심 쟁탈전’ 가열
  5. 5진보진영 또 도덕성 타격…‘정의당 쇼크’ 집단탈당 우려
  6. 6시장 보선 기선잡기…여야 ‘가덕신공항戰’ 재점화
  7. 7이언주·이진복 “朴 무고 교사” 의혹 제기…박형준 “터무니없는 말”
  8. 8“누구도 안심 못해” 야당 경선 컷오프 주목
  9. 9김영춘-박인영 야당 협공 연대…여당 원팀 전략 위력 발휘할까
  10. 10정의당 김종철 대표, 성추행으로 전격 사퇴
  1. 1작년 증시 활황 타고 유상증자 60% 늘어
  2. 2“지구온난화 영향, 2100년 한국 해역 해수면 73㎝ 상승”
  3. 3기관·외국인 쌍끌이 코스피 종가 3200도 뚫었다
  4. 4예산 부족한데…정부 ‘낚시산업 선진화’ 실행 의문
  5. 5코로나 탓 컨 물동량 희비…부산항 줄고 인천항 늘고
  6. 6부산항 해운항만업계 49.7% “경영실적 악화”
  7. 7주가지수- 2021년 1월 25일
  8. 8부산은행 새해 정기예금 특판
  9. 9라임펀드 분쟁조정 기업·부산은행 포함될 듯
  10. 10건강가전 강화하는 캐리어에어컨, 안마의자 출시
  1. 1거창창포원, 경남도 제1호 지방정원 됐다
  2. 2부산시민 52% “버스 안 탄다”…가장 큰 불만 ‘긴 배차 간격’
  3. 3삼성도 특검도 재상고 포기…이재용 징역 2년6월형 확정
  4. 4지역대'업' 총장에 듣는다 <2> 부경대학교 장영수 총장
  5. 5부산 원자력 의과학 인프라 풍부…방사선 치료·연구 특화
  6. 6‘고성 보건소장 생일행사’ 행안부 감사
  7. 7[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98> 배달과 박달 : 밝게 살자
  8. 8공사 중단 양산 다인로얄(4·5차 505세대, 물금 주상복합건물) 허가 전격 취소
  9. 9경남교육청, 노후 학교 71개 건물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 리모델링
  10. 10남해군, 노량~지족마을 해안 자전거길 조성 추진
  1. 1아이파크 박민규 임대영입, 수비력 강화
  2. 2전인지 4위…1년3개월 만에 최고 성적
  3. 3이대호·롯데 FA 평행선…4번 타자 재계약 소식은 언제
  4. 4김시우 PGA 통산 3승 ‘번쩍’…3년 8개월 기다림 끝났다
  5. 5신세계그룹, SK 와이번스 인수 추진
  6. 6‘인민날두’ 안병준 아이파크 이적…최전방 화력 보강
  7. 7이재성·백승호 맞대결…킬, 다름슈타트 2-0 승리
  8. 8MLB ‘진짜 홈런왕’ 행크 에런, 하늘로 떠나다
  9. 9아, 1분!…잘 나가던 kt 연승행진 일단 멈춤
  10. 10유럽 무대 첫 멀티 골 황의조, 양팀 중 ‘최고 평점 8.8’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진보당 노정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릴레이 인터뷰
국민의힘 이언주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축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
탈산업화시대 연착륙을 위한 필수조건
기고 [전체보기]
코로나 시대 부산교육의 진화 /김석준
에코델타시티에 스마트 응급외상시스템을 /이상현
기자수첩 [전체보기]
문재인 대통령 ‘123분 신년회견’에 지역은 없었다 /정유선
비판에 귀 닫은 부산교육청…이 기사도 감출건가요? /김화영
김석환 칼럼 [전체보기]
‘능력주의’와 ‘예타만능’이라는 거짓말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해 뜨는 아침, 겨울 산의 속살을 보라
정치적이기엔 너무도 문명적인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관현맹인과 여악의 전통
동래부동헌에 풍악이 울리다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코로나 고양이
또 등판하는 대대행(代代行)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의 시간을 맞으며
이주의 시대와 문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불로초 감귤
북어보푸라기
사설 [전체보기]
해수부, 오페라하우스 지원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성평등 외쳐온 정의당 대표가 성추행으로 사퇴라니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공유경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원격의료 도입의 조건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비핵평화, 중단없이 가야 할 길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되나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이홍 칼럼 [전체보기]
카리스마에 대한 오해
독성 리더십
장병윤 칼럼 [전체보기]
알바트로스, 오 알바트로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영남권 메가시티로 가는 길
서울에서 멀어지면 불안한 나라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불멸의 연인
연말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겨울나기
메리 크리스마스
특별기고 [전체보기]
부산 코로나 병상 부족 현실화…생활치료센터 설치 힘 모아야 /고광욱
우리의 희생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빈센트 커트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홍도의 ‘논을 가는 소’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