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버스 지하철 택시 등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80대쯤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힘겹게 버스에 올랐다. 마스크를 안 쓰고 있었다. 젊은 버스기사는 큰 소리로 “마스크 없으면 못 탑니다. 내리세요”하며 타박을 줬다. 기사 입장에선 원칙이 그랬고 다른 승객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엉거주춤 승강장으로 내려가 이도저도 못하고 멍하니 뙤약볕 아래 서있는 할머니를 두고 버스는 무심히 출발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대사다. 사람이 지켜야 하는 기본 예의범절이 매너다. 하지만 이것도 문화에 따라 다르고 때로는 변한다. 이슬람 문화권인 두바이에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여성이 있으면 남성은 동승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낯선 남녀가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게 금기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이 닫혀있으면 노크를 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에선 한때 에스컬레이터에서 한줄서기가 모범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두줄서기로 바뀌었다. 걷거나 뛰는 걸 방지하고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들었다.

부산 등 지자체들이 마스크 착용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실내는 당연하고 실외에서도 사람이 붐비면 마스크를 꼭 쓰라는 거다. 어기면 10월부터 과태료가 부과된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마스크로 인한 시비가 잦은 참이다. 부산에서는 마스크를 쓰라는 주민센터 공무원을 민원인이 폭행하는가 하면, 서울 지하철에서는 마스크를 대충 걸친 채 일행과 떠들던 노인이 이를 지적하는 승객에게 폭언을 퍼붓다 입건되는 일도 있었다. 코로나 기세가 거세질수록 미착용은 물론, 덥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턱이나 귀에 마스크를 걸고 있는 일명 ‘턱스크’나 ‘귀스크’족을 향한 시선이 따가워지고 있다.

영국의 한 면역학 권위자는 “코로나는 천연두처럼 백신으로 종식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며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인류와 함께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내에선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기, 헬스장에서 거리두고 운동하기, 길에서 흡연 않기, 복잡한 엘리베이터 피하기, 악수 대신 주먹으로 인사하기 등은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매너다. 다만 세심한 준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노인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최소한 대중교통수단이나 공공기관만큼은 예비 마스크를 비치해놓는 식이다. 매너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배려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