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의 불똥이 애꿎은 ‘소설’에 떨어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한홍 미래통합당 의원이 언쟁을 벌인 지난달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다. 당시 윤 의원은 추 장관에게 고기영 법무부 차관 발탁이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이 있는지 물었다. 고 차관이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이에 “소설 쓰시네”라며 냉소적으로 대응했고, 발끈한 야당 의원들은 회의를 거부해 버렸다.

작은 소동으로 끝났을 이 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건 한국소설가협회가 반발하면서다. 협회는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이 소설을 ‘거짓말 나부랭이’ 정도로 취급하는 현실에서 문학을 융성시키는 일은 참 험난하다”고 비판했다. 얼핏 과민반응으로 보일 수도 있다. 지어내 말하거나 거짓말하다는 뜻의 ‘소설 쓰다’는 관용구가 사전에 실릴 만큼 널리 쓰이는 실정이어서다. 하지만 소설의 탄생과 의미를 되새겨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리얼리즘 문예이론을 체계화한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에 따르면, 소설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이다. 중세의 영웅담 같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애덤 스미스가 발견한 시장경제법칙처럼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합리적 허구라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협회의 소설 정의와 같은 의미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자율적으로 조절된다는 시장경제법칙은 현실을 미화한 이상일 뿐이다. 실제로는 1930년대 대공황이나 코로나19 사태 같은 자본주의의 내적, 외적 요인에 따른 ‘시장실패’가 발생한다. 그 사회의 주체인 시민은 이상과 현실이 엇갈리는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루카치는 그래서 시민을 ‘문제적 개인’이라고 했다. 소설은 문제적 개인을 다룬 근대적 문학 형식이다.

이런 루카치의 소설론은 한국 정치에도 딱 맞아떨어진다. 검찰개혁을 한 번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검찰개혁 과제를 “정치적 중립 또는 탈정치”라고 했다. 2011년 펴낸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에서다. 그는 “정치적 중립은 검찰권에 대한 개입을 절제, 자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정치적 중립은 문 정부 검찰개혁의 이상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내놓은 검찰개혁 권고안이 대표적이다. 권고안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고등검사장에게 넘기고, 법무부 장관이 고검장을 지휘하도록 했다. 권고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검찰총장처럼 임기(2년)가 보장되지 않는 고검장은 승진을 위해 권력에 순종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런 상태에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같은 정권 연루 사건 수사는 불가능하다. ‘검찰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빗발치는 이유다.

검찰개혁을 외치면서 실상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모순을 드러내니, 루카치가 말하는 문제적 개인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검언 유착 의혹 사건에 대한 불기소와 수사 중단을 권고한 상황에서 담당 수사팀장이 상급자를 상대로 ‘압수수색 육탄전’을 벌이는 파행까지 불거졌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초래한 돌출행동인데,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이렇듯 루카치의 소설론을 충실히 구현하는 문제적 개인이 “소설 쓰시네”라며 소설을 냉소의 수단으로 여기는 건 자못 우스꽝스럽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존을 모르는 듯해서다.

압권은 검찰개혁 등을 연구한다고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의 모순이다. 이들 중 한 명이 올린 페이스북 사진을 보면, 이들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파안대소하고 있다. 그 뒤쪽 벽에 걸린 TV 화면에는 홍수 피해 뉴스 특보가 나온다. 물이 차오른 도로와 함께 ‘침수 아파트 1명 심정지’라는 자막이 뜬다. 비난 여론이 일자, 이들은 언론이 “악마의 편집”을 했다고 변명했다. 자신들이 공개한 사진인데도 말이다. 그러다 뒤늦게 사과하면서도 “악의적 보도”라는 책임 전가성 언급은 빼놓지 않았다. 문제적 개인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그동안 검찰개혁과 관련해 여당과 보조를 맞춰온 정의당이 비판적 입장으로 돌아선 건 이런 연유에서다. 정의당은 “사법개혁의 대의로 출발한 검찰개혁이 정권에 순응하는 검찰을 만들려는 건 아닌지 재점검해봐야 한다”고 했다. 루카치 소설론의 궁극적 목적은 모순의 해소다. 문제적 개인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소설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론에는 치열한 삶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추 장관에 대한 소설가협회의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민생의 질곡을 다루는 소설을 가볍게 여긴다면, 민생 또한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허리가 휘도록 무거운 민생과 달리, 정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우니 이를 어찌해야 하나.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