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의 용접용 기자재 생산기업 ㈜일흥은 최근 ‘로봇 퓸 집진 시스템’을 개발했다. 용접할 때 발생하는 ‘퓸’이라는 유해가스를 차단하는 장치다. 집진 시설을 통해 제거하지만 일반적인 후드 시설은 집진율이 떨어져 작업자에게 해를 끼친다. 일흥이 개발한 집진 시스템은 불꽃을 내는 토치 입구에 집진 장치를 달아 공기 중에 유해가스가 흩어지는 것을 최소화했다. 집진 구간 거리도 조절할 수 있고 토치마다 다른 형태로 만들어 부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동성도 뛰어나다. 최근 칠레 자동차 공장에 납품하는 성과를 거뒀다.

일흥과 같은 기업을 뿌리기업이라 부른다.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밑바탕이다. 자동차를 생산할 때 필요한 주조·금형·용접·열처리가 모두 뿌리 산업이다. 전국적으로 뿌리기업은 9만 개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 2일 발표한 ‘뿌리 4.0 경쟁력 강화 마스터플랜’에서 뿌리 소재의 범위를 금속뿐 아니라 플라스틱·고무·세라믹·탄소·펄프까지 확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밀크런(Milk Run)’ 도입 계획도 밝혔다. 밀크런은 기업이 공동으로 자재를 구매하거나 물류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우유 회사가 축산 농가를 돌면서 우유를 거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정부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된다. 일흥도 지난해 ‘뿌리산업 통합지원체계 구축 및 기술고도화 사업’에 선정된 기업이다. 열교환기·압력용기를 생산하는 ㈜마이텍 역시 시제품 제작과 수출바우처 지원을 받아 스위스·스웨덴·이탈리아로 수출을 늘려 지난해 대비 30% 이상 매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뿌리산업 통합지원 구축사업에 선정된 건우초경㈜도 지난해 중국 상해에서 열린 중국국제공업박람회에 참가해 초경합금 수출판로 확보에 성공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 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뿌리기업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부산기계공업협동조합도 신발끈을 고쳐맸다. 지난 7일 뿌리산업 활성화를 위해 중소벤처기업 혁신성장 플랫폼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뿌리산업 유망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확대와 ▷기술력 향상 지원 ▷수출역량 강화·글로벌 진출 지원 ▷구인·구직 인력 매칭 ▷우수 연구개발(R&D) 인력 양성이 주요 내용이다.

부산상공회의소 역시 산업기술 연구기관인 부산산업과학혁신원과 산업 생태계 혁신을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주력 제조업의 침체되는 상황에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신산업 발굴과 산업기술 혁신이 절실하다는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과 산업 생태계 혁신을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혁신을 위한 정보·자료수집과 지역경제 발전 공동 프로젝트 수행·조사연구는 물론 공동학술 세미나·토론회를 추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앞서 부산시는 녹산국가산업단지와 사상·신평·장림공업단지를 연계하는 ‘부산형 스마트산업단지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녹산은 주력산업을 고도화해 친환경 조선기자재와 미래형 자동차부품 산업단지(미래 수송기기 모듈부품)로 키운다는 구상이 담겼다. 신평·장림은 도시형 혁신 생산기지로 바꿔 나가고 사상은 스마트시티로 변화할 예정이다. 이와함께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지사단지는 미래형 수송기기 부품과 해양첨단소재산업 기지로 특화된다. 에코델타시티는 에너지·헬스케어 산업의 중심으로 계획됐다. 또한 쾌적한 주거 생활공간도 갖추게 된다.

부산시는 스마트 클러스터 안착을 위해 스마트 제조와 복합물류 표준모델을 구축·확산한다는 목표다. 또한 스마트공장을 보유한 소재·부품·모듈·완성품 기업의 공정별 제조이력 데이터를 데이터센터를 통해 연결·공유·활용하는 모델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제품 제작센터 건립 ▷산업단지 환경개선 펀드 ▷산업단지 공동혁신 연구개발센터 운영과 휴·폐업공장 리모델링 ▷청년 창업친화적 생태계 구축 ▷스마트공장 특화캠퍼스 ▷부산형 스마트제조 실무인재양성과 같은 세부계획도 수립했다. 서부산권에 위치한 산업단지 전체를 묶어 구조를 고도화하는 한편 신제품 개발과 해외진출 판로개척 확대를 돕기 위해서다.

정부와 부산시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스마트팩토리를 통한 제조 혁신과 뿌리산업 육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산업과 제조혁신은 안정된 일자리 창출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 과정에서 부산이 주도권을 선점하는 데도 긴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제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현장 목소리가 정책에 신속히 반영되고 제조업 종사자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기계인의 축제’와 같은 의미 있는 이벤트도 신설되길 기대한다.

정용환 부산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