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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허물어지는 집을 향한 묵념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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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7-19 19:37:0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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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채가 굴착기에 헐리고 있다. 이 동네에 산 지 십 년, 최근 들어 집을 허무는 일이 부쩍 잦다. 누군가가 심신을 쉬었을 집이 무너질 때마다 알싸한 마음으로 현장을 바라보게 된다. 단독주택이 사라진 자리엔 필경 빌라나 원룸 같은 건물이 들어설 거라는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다.

이곳엔 정원 있는 집이 즐비해 골목을 걷는 즐거움이 있다. 한데 계절을 알리고 자연을 가까이서 보게 해주던 주택들이 세태에 못 견디고 쓰러져 간다. 주택만이 아니라 한갓진 골목과 골목이 품은 훈기마저 사라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집 옆 골목엔 빌라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한 골목에 올해 들어서만 주택 네 채가 증발했다. 작고 큰 수목과 꽃나무가 있어 새가 지저귀는 담장 너머를 보며 걸을 때면 분주하던 마음도 느긋해지던 길이었다. 빨갛고 노랗게 자잘한 꽃을 피운 덩굴장미가 돌담을 감고 피던 집, 유백색 목련꽃을 탐스럽게 피워 봄을 알리던 나무 대문 집, 잔디 깔린 마당에 뛰어다니던 강아지마저 부럽던 마당 넓은 집….

을씨년스럽게 드러난 흙바닥을 볼 때면 흔적 없이 뜯겨나간 집이 떠오른다. 살던 사람은 못 볼 가족의 온기가 스몄을 땅. 건축업자는 그 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쯤으로 보이는 게지. 집을 깡그리 밀어버린 땅에는 잠시 숨 고를 틈도 없이 철근을 심는다. 지금은 마당 넓던 집에도, 목련꽃이 피던 집 자리에도 외지인 같은 빌라가 들어서서 새집 냄새를 풍기고 있다. 고향 이웃집 같은 집이 있던 자리마다 그들이 일상처럼 비집고 들어왔다.

정답던 단독주택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푸르던 뒷동산도 통째 날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끝에서 반겨주던 산이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더니 아파트가 치솟았다. 동산 옆구리를 걸어 산에 가곤 하던 소소한 행복마저 뭉개졌다.

공사장을 지날 때마다 눈엣가시가 돋는다. 소음 탓도 있고 보행의 불편함도 크지만, 무엇보다 연륜이 묻은 주택을 앗아간 데 대한 원망 때문이다. 내가 살던 집도 아니건만, 대문 두 짝을 다 열어놓고 이삿짐이 나오면 또 한 채가 무너지는구나 하고 심란했다. 철 따라 피는 꽃과 정원이 얼마나 위안을 주었던가를 떠난 주인들은 모를 것이다. 공사하는 두 동 사이에 낀 아담한 주택이 한 채 있다. 나는 끝까지 버틸 테야, 이런 다짐이라도 하듯 담장 페인트칠 하는 걸 보며 주인을 응원했다. 공사업자의 유혹에 넘어가 제발 떠나는 일이 없기를. 누가 먼저 짓나 내기라도 하듯 집 양쪽에서 철근을 높여가는 공사장 사이에서 꿋꿋한 그 집을 응원한다.

이 동네에 정착하기로 할 때 크게 작용한 건 교통편이었다. 정원 딸린 가정주택이 많은 점도 한몫 거들었다. 거기에다 쇠미산 진입로가 손닿을 거리에 있다는 건 든든한 자산이나 다름없었다. 이야말로 원하던 바라 집을 계약하고는 산을 향해 두 팔을 뻗고 환호했더랬다. 살아 보니 생활소음도 별로 없는데 눈에 두드러진 변화는 주변 환경이었다.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며 하늘이 조각나고, 오피스텔을 곳곳에 신축한 결과 출근길 골목을 환히 비추던 아침 햇살마저 막아버렸다. 탁 트인 시야도 점차 좁아져 답답해졌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아파트나 빌라를 보며 장차 도시의 경관이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게 된다. 신만덕에 알록달록 모양도 예쁜 주택이 밀집한 레고 마을이 있다. 각기 다른 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은 보기만 해도 푸근하다. 감천문화마을은 자연 부락이지만 이곳은 정책적으로 만든 주택지라는데, 재개발지역도 이처럼 사람 사는 훈기 나는 낮은 주택단지로 형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어느 날 집 앞 공사장을 지날 때 마치 시작 버튼을 누른 듯 한 선율이 머릿속에 흘렀다. 스페인 통치 때 마추픽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잉카인의 슬픔과 대규모 농민 반란의 중심인물로 처형된 콘도르 칸키의 처지를 빗댄, 페루 민중이 불렀다는 희망 노래 ‘El Condor Pasa’. 안데스 사람들이, 비상하는 콘도르처럼 자유를 찾아가겠다는 비애 담긴 노래가 집터가 내는 영가인 듯 공사장을 맴돌았다. 굴착기에 해체되는 집에 묵념한다.

수필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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