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운동센터에는‘곰돌이 푸’를 닮은 센터장님이 있다. 듬직한 체구에 비해 동글동글한 얼굴은 귀여우면서도 푸근한 인상을 풍긴다. ‘힐빙 캐어’(Heal-being care), 힐링(healing)과 웰빙(well-being)의 합성어로 치유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관리해 준다. 휴(休) 밸런스(Balance)가 운동센터의 정확한 명칭이다.

‘슬링’이라는 줄을 이용해 무중력 상태로 허리를 풀고 상의 탈의를 한 뒤 도수 치료를 받는다. 너무 아파 부끄러움도 잊어버린다. 곡소리가 튀어나오고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내 눈물의 양 만큼 푸 센터장님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고객 한 명 한 명 정성을 다하는 한결 같은 모습 때문일까, 운동을 마치고 나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푸 센터장님은 무보수 견습생을 거쳐, 평직원, 물리치료 팀장, 부원장, 지금의 센터장이 되기까지 20년 넘게 해군 함정 병과에서 군 복무를 한 제대 군인이다. 장애인 센터나 복지원에도 봉사 활동을 가끔 나가는데 6·25 참전 용사들의 말벗도 되어주고, 치료도 해드린다. 푸 센터장님은 유독 ‘운동화’에 집착하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어르신은 ‘운동화’를 보면 6·25 전쟁 시절에 달리기를 잘했던 친구 생각이 난다고 자주 말한다고 했다. 열여덟에 입대했던 그 친구는 6·25 전쟁으로 피폐해진 마을과 온갖 잔인한 형상을 목격한 뒤, 폐인처럼 살다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푸 센터장님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저는 20년 넘게 군 생활을 해서 그런지, 참전 용사 어르신들을 뵙는 게 좋아요. 이상하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책임감이 더 생겨요.” 봉사활동을 갔다 온 날은 더 푸근한 곰돌이 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군인들의 삶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나 사회로 돌아와 취·창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제대 군인 이야기는 더더욱. 전쟁 관련 이야기나 군대 무용담은 좋아하지도 않고, 전쟁 영화도 잘 안 보는 나였다. 제대 군인·참전 용사?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지금,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는 것도 다 그분들 덕분인데도 말이다. 문득, 책임감이란 말에 영화 ‘1917’(샘 멘데스 감독·2019년)이 떠올랐다. 그나마 최근에 본 전쟁 영화였다.

영국 병사인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독일군 함정에 빠진 매켄지 중령에게 에린 무어 장군의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받았다. 하지만 적군의 비행기 조종사에 의해 블레이크가 죽음을 당하고 스코필드는 만만치 않은 역경을 홀로 견뎌내며 끝까지 임무를 수행한다. 편지를 전달하고 블레이크의 형을 만나 유품을 전해 주는 스코필드.

시간과 싸우고 자기 자신과 싸워가며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는 과정은 감동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나의 통증쯤은 그들이 짊어진 책임에 비하면 아주 가볍고 사소한 것이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나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빚이 있는 것 같다.

며칠 뒤 나는 센터에 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푸 센터장님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오늘 하루 센터 문을 닫게 됐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운동화에 집착하면서 달리기 잘하던 6·25 때 친구’ 이야기를 가끔 하던 그 어르신의 장례식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평생 그 친구를 그리워하다 가셨으니, 그곳에서 친구분을 만나셨겠죠?” 푸 센터장님은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한참 문자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문자 속에서 푸 센터장님의 어르신에 대한 그리움을 읽는다. 나는 빙그레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같은 답을 문자로 찍어 보냈다.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 나는 푸 센터장님의 ‘이상한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참전 용사들이 나라를 수호했듯, 육체적 고통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 고통까지 치유하고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은 아니었을까. 나는 곰돌이 푸 대신 ‘치유의 시간 관리사’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