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부분의 땅 혹은 서울 이외의 지역’. 국어사전에 나오는 지방에 관한 정의다. 이 단어에는 어느덧 삼류 혹은 낙후라는 지역차별의 계급성이 은폐돼 있다. 서울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려면 “시골 내려가시네요”란 악의 없는 인사를 심심찮게 받는다. 인구 350만 대도시가 이런 대접을 받는데 다른 지역은 물어보나 마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30년 넘게 고도성장의 길을 달렸다. 정부는 모든 정책을 대기업 육성에 쏟아부었고 서울과 그 인근 지역의 발전과 정비에 온갖 정성을 들였다. 간혹 지방에서 불평하면 적당히 공장 몇 개 지어주고 달래면 그만이었다. 먹고 살 거리가 서울에 생기니 사람들은 거기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서울과 경기도는 전 국토 면적의 십 분의 일에 지나지 않지만, 주민등록 인구는 2020년 3월 현재 전체 인구의 44.5%를 차지한다.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은 전형적인 ‘규모 불경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효율성 증대보다는 각종 사회적 부조리가 더 많이 드러난다. 그중 하나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아파트 가격이다. 최근 서울 어느 아파트 가격이 한 평에 5000만 원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2000만 명 중에서 연 4800만 원 이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지난해 10월 무려 82.1%였다. 일 년 동안 한 푼 쓰지 않고 뼈 빠지게 일해도 한 평조차 못 사는 사람이 100명 중 80명이라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우리나라는 2018년 세계에서 5000만 명 이상 인구를 가진 나라 중 일곱 번째로 1인당 GDP 3만 달러 그룹에 진입했다. 1인당 GDP 4만 달러 정도면 우리도 선진국 중하위 정도에 턱걸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4만 달러를 생산하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2018년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평균 성장률이 3.0%이면 9년, 2.5%면 10년이나 걸린다.

그런데 현 상황대로면 이조차 비관적으로, 10년보다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우리나라는 저성장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4%는커녕 3%를 달성하기도 힘겨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압축성장의 길을 걸었던 만큼 조로 현상이 급속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떨어지는 성장률을 있는 힘을 다해 조금이라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도(?) 지방은 수도권보다 인프라가 낙후돼 있다. 거꾸로 지방이 남아있는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에서 기차 타고 지방 가기는 쉽다. 그런데 지방에서 지방으로 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중앙이 각 지역을 종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은 전혀 바뀔 기미가 없다. 토건족을 위한 사업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보다 취약하기 짝이 없는 지방살이를 역으로 성장동력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국가균형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지방을 보는 수도권의 시각이다. 토건이든, 첨단이든 지방의 사업에 대해 정책 당국은 그 필요성보다는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비타당성 평가는 지역사업의 목을 쥔 고삐다. 이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온갖 정보력을 동원하느라 지방정부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기존 상황을 전제한 예비타당성 검토의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지방에 대한 투자를 비용 면에서만 바라보는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역주민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골고루 혜택을 누리는 균형발전은 당연한 국민적 권리다. 지역 간 균형발전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것이 현실이지만, 지방정부들은 더 큰 틀에서 일치단결하고 합심해야 한다. 그 힘은 지역주민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동맥경화를 앓고, 지방은 지방대로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에 빠져 있다. 균형발전은 국가 자원을 다 쓰고 나서 여분이 있을 때나 하는 한가한 과업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을 살리는 상생 방안으로서, 떨어진 성장률을 높이는 동력으로서 국가균형발전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강의 기적처럼 균형발전의 기적이 필요한 때이다. 발상의 역전이 요구된다.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