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한적한 골목길에서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을 본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엄마와 어린 아들쯤 되어 보이는 두 사람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셔틀콕과 라켓이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를 모처럼 들어보겠다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본다. 허공을 가르는 셔틀콕의 날렵한 몸놀림도 덤으로 구경하겠다 싶었는데, 웬걸 두 사람의 배드민턴 실력이 영 시원찮다.

대여섯 살쯤 된 어린 아들은 배드민턴을 처음 배우는지 손에 든 셔틀콕을 공중으로 쳐 올리는 동작부터 어설퍼 보인다. 엄마도 실력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들이 아무렇게나 쳐 올린 셔틀콕을 거의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순서를 바꾸어 엄마가 먼저 셔틀콕을 쳐 올려도 마찬가지. 어린 아들은 날아오는 셔틀콕 앞에서 연신 허공만 휘젓고 있다. 셔틀콕에 담긴 ‘왕복(shuttle)’이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한 번 날아간 셔틀콕은 좀체 돌아오지를 못하고 땅에 떨어지고만 있다. 신나게 랠리를 이어가지 못하니 재미가 떨어질 법도 한데, 두 사람은 의외로 진지하다. 열심이다. 잘 맞지도 않는 셔틀콕을 맞추려고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면서 땀을 흘리고 있다.

그래, 저것도 운동이라면 운동이다. 이런 생각으로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리는데, 20년 넘게 말 다루는 걸 업으로 삼아온 사람답게 또 이런 생각이 달라붙는다. 말이든 셔틀콕이든 잘 보내줘야 잘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네트를 사이에 둔 온갖 구기 종목이 그렇듯이 배드민턴 역시 서로 공을 주고받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대화하듯이 서로 잘 주고받기 위해서도 우선은 공을 잘 넘겨주려는 태도와 그에 걸맞은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잘 넘어온 공을 잘 받아서 넘겨주려는 태도와 기술이 뒤따르면 그때부터 랠리가 시작된다. 이쪽과 저쪽을 사이좋게 오가는 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셔틀콕의 아름다운 왕복 운동을 보기 위해서도, 전혀 다른 사람끼리 붙어서 흥미진진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 공을 잘 넘겨주듯이 말 한마디도 신경 써서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 상대가 받을 수 있도록, 기왕이면 잘 받아서 잘 넘겨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태도와 기술은, 말로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공으로 주고받는 운동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어쩌면 기본 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이러한 태도와 기술은 처음 말을 배우고 공을 익힐 때도 중요하지만,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늘 잊지 않고 새겨둬야 하는 덕목이다.

가령, 어떤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논리와 언변을 갖춘 논객일지라도, 날카롭게 공격하는 말의 이면에는 늘 상대와 대화하려는 태도를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태도가 결여된 논객이라면, 얼마 못 가서 독불장군이라는 소리부터 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을 다루는 솜씨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선수일지라도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상대와 공을 주고받는 것으로 몸을 푼다. 반대편 코트에 숙명의 라이벌이 있거나 기량이 한참 못 미치는 상대가 있거나 할 것 없이 시합에 들어가는 방식은 똑같다. ‘사이좋게’ 공을 주고받는 시간부터 가진 다음 시합에 들어가는 것이다.

시합을 잘하기 위해서도 먼저 상대에게 공을 잘 넘겨주는 연습이 필요하다면, 말을 잘하기 위해서, 말로 빚은 관계를 잘 가꾸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어쩌면 단순한 것이다. 한마디 말도 잘 내보내야 잘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어떤 말이든 잘 보내줘야 상대가 잘 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내가 잘 받을 수 있는 말이 된다는 사실을 늘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인데, 어디 그게 쉬운가? 쉽지 않으니까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말을 계속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내게서 튀어 나간 어떤 말이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처럼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걸 생각하면 한마디 말도 예사로 할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또 말을 한다. 셔틀콕을 바꿔서라도 계속 배드민턴을 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