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잘할 것 같은, 실수하지 않을 것 같은, 지혜롭게 마음 추스르고 넘길 것 같은 일들이 문득 발목을 붙든다. 그러나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이미 지나온 길은 막혀버렸다. 미래가 두렵더라도,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이제는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자전거 바퀴를 앞으로 굴려 가듯이.

자전거를 탄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에는 몸을 움직여 시름을 떨쳐내기로 한다. 을숙도 갈대밭을 시작점으로 낙동강 물길을 거슬러 북으로 북으로 페달을 밟는다. 며칠 전 이 길을 요량 없이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였다. 초보 실력으로 동호인들 후미를 따라 라이딩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결과는 예상대로 참담했다.

출발선까지 되돌아오는 길은 고통이었다. 맞바람을 버티다 자갈길에 나뒹굴었고 안장통과 함께 허벅지에 시퍼런 멍자국을 두르고 말았다. 기어 변경도 자유롭지 못한 데다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간식을 잔뜩 넣은 거북등 같은 배낭까지 업은 탓이다. 왕복 사십여 킬로미터 길을 단 한 번의 휴식만으로 질주하는 팀에 합류했으니 무리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

그 길을 다시 혼자서 간다. 제때 도전하지 않으면 갱신의 기회마저 놓치고 만다는 것을 뒤늦게 터득한 까닭일까. 이번에는 느리게 가기로 마음먹는다. 몸은 최대한 가벼워야 하리. 반듯하게 닦인 자전거 길도 있지만 강바람이 나드는 좁은 황톳길을 따른다. 겨우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여린 길에 두발 바퀴가 들어섰다. 한가롭게 돋는 햇풀들을 누르고 가기 자못 미안한 땅이다. 그 마음을 아는 듯 바퀴는 무거운 주인을 받치고도 공손하게 움직인다.

길이 따라 흐르고 강물이 번져간다.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없다. 오로지 새들의 날개 부딪는 소리와 갈대청의 풋내와 흙바람의 부드러움만이 온몸을 감싼다. 초록 쑥 무더기 위에 봉긋이 떨어뜨리고 간 새똥도 반갑다. 나보다 먼저 다녀갔구나. 덤불 사이로 솟은 찔레나무가 눈물 같은 꽃을 뿌렸으며, 지천으로 돋은 토끼풀도 잎자루 위에 밥물이 넘치듯 허연 꽃숭어리를 펼쳐내고 있다. 세상은 각자 자신의 존재에 충실하느라 바쁘다. 저 강도 방금까지 흘러온 물이 모여서 출렁거리듯이 숨탄것들은 어제까지의 숨이 모여서 오늘의 생이 되었을 터. 나 역시 당신이 알던 어제의 내가 아니다.

느닷없이 이 강가에서 몸을 흔드는 한 포기의 옥수숫대가 바퀴를 멈추게 한다. 제 땅이 아닌 강둑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 기특하다. 불룩한 옆구리를 뒤틀며 뿌리를 밀어 올리느라 얼마나 용을 썼을까. 그래도 푸른 잎만큼은 훨훨 자유롭구나. 옥수수밭에서 이탈한 저 삶이 가볍거나 하찮다고 말할 수 있는가.

풀 냄새를 안고 나무다리를 지난다. 흙길은 끝나고 고개를 넘을 차례. 기어 변속만 제대로 하면 수월하게 오르막을 건널 수 있다. 앞쪽은 짱짱하게 당기고 뒤는 느슨하게 풀어야 가볍게 치고 올라간다. 이론과 달리 초보에게 오르막은 극한의 고행이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다리 힘은 저절로 풀린다. 내리막이 쉬운 것도 결코 아니다. 내려갈 때는 발을 저어 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이 가파른 길에서 한눈이라도 팔면 순간 휘청거리게 되는 법. 몸이 튀지 않도록 핸들을 꽉 붙들어야 한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힘을 빼고 무게중심과 브레이크만으로 리듬을 탄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마음의 군더더기부터 덜어낸다.

낙동강 줄기를 따라 반나절을 달려왔다. 등줄기가 땀으로 범벅될 때 가장 청량하고 신선한 바람을 만난다. 자전거는 요령이 없고 오직 연습뿐임을 깨닫는다. 세상사 뜻대로 되는 것이 없지만 마음먹고 내디디면 이루어지는 일도 생긴다.

삶이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것이므로 우직하게 바퀴를 저어가야만 할 일이다. 지칠 때쯤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는 김훈 선생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