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운명은 비극적이다. 아무리 의지와 신념을 불태워도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존재가 생로병사 과정을 거쳐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에 인간 삶은 허무하다. 이런 비극성과 허무함을 딛고 살아내야 하는 인간이 직면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인간 각각의 거대하고 다양한 욕구가 충족될 만큼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원을 바탕으로 욕구의 우선 순위를 정해 상위 욕구는 택하고 다른 욕구는 포기해야 한다.

선택 행위는 의사결정 측면에서 자유와 그 결과로서 포기 행위를 포함한다. 사회·국가도 실현해야 할 목적(욕구)이 있으므로 이러한 (공공)선택 행위를 한다. 이 경우 모든 개인의 욕구를 다 반영할 수 없어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통해 강제한다. 인간 일상은 대부분 이런 개인적·사회적 선택 과정이 씨줄 날줄이 되어 여러 현상을 창출한다. 누구에게 선택 권한을 주든, 자신이 포기해야 할 욕구를 실현하려 하면 다른 사람(사회·국가)의 자원을 약탈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이런 행위가 작동되는 한 개인·사회 차원에서 갈등이 재연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삶 자체가 항상 갈등의 변주곡이었다. 갈등이 증폭된 때는 비극성과 허무성이 극명히 표출됐고, 갈등이 축소된 시기에는 이런 한계 속에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아냈다.

군주제나 독재국가처럼 선택 권한이 특정한 사람에게 부여됐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이 정한 욕구의 우선순위에 따라 개인과 국가 자원에 대한 선택 행위를 한다. 현명한 군주는 민심을 잘 살펴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국민도 생존에 필요한 상위 욕구들이 실현되니 다른 욕구의 포기를 기꺼이 수용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갈등이 최소화된 상태를 맹자는 왕도 정치라 표현했다.

그런데 군주나 독재자가 자기 욕구 기준을 적용하면, 자신의 욕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고, 국민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 이런 내부적 약탈 구조는 일정한 자원 범위 안에서 국민 욕구 실현과 군주·독재자의 욕구 실현을 상충관계로 만들었다. 이때 국민은 자신들의 최상위 욕구를 되찾기 위해 저항할 것이고, 군주나 독재자는 자기 욕구를 지키고자 온갖 이념, 상징 조작, 법 제도를 통해 국민을 강제할 것이다. 이 선택기준이 안 바뀌는 한 ‘왕당파’와 ‘국민파’ 간 진영 싸움은 지속될 것이다. 이런 갈등을 타국의 자원으로 해결하려 하면 필연으로 전쟁이 터져 대내적 갈등이 대외적 갈등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이런 갈등 구조는 승패 게임 성격을 띠기에 모든 자원을 소모하게 되고 결국 국가는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현재 대부분 선진국 역사는 국민의 승리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모든 개인에게 선택 권한이 부여됐음을 뜻한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정한 욕구 우선 순위에 따라 각자 욕구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모두 자신의 자원 범위 내에서 선택하는 것보다 타인의 자원과 교환해 욕구 수준을 높일 수 있음을 체득했다. 이런 유인 체계는 무계획적이고 자생적인 시장 질서로 진화했다. 시장이 크고 다양할수록 일정한 자원을 가지고도 개인들은 더 많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이 됐다.

누군가 시장을 독점하거나 권력으로 왜곡하면 시장 자체가 약탈 구조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 공공 선택도 개인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니, 모든 개인의 욕구가 반영된 의사결정 장치를 마련했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 제도다. 이 제도에서도 대표자들이 국민 욕구의 우선 순위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자기 욕구를 우선하면 또 다른 약탈 구조가 국민과 대표자 간의 상충관계를 만들 것이다. 소모적인 승패 게임의 시작이다.

한국 등 선진국에서 중산층이 무너지는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내부적 약탈 구조가 고착화한다는 하나의 방증이다. 코로나 사태는 수많은 노동자 해고와 중소기업 도산을 유발하면서 이런 구조를 더 선명히 보여준다. 그 원인을 미국 트럼프 정부는 내부 정치 실패가 아니라 타국으로 전가하면서 갈등을 세계로 확장한다. 세계는 승패게임이 진행되는 소모적인 새로운 대결 시대로 접어들었다. 세계의 각 개인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나의 욕구’를 명확히 인식시키고 실천을 요구해야 하는 정치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