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는 1783년 세계 처음으로 학교 체벌 금지령을 내렸다. 영국 철학자 존 로크(1632~1704)의 ‘교육론’,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에밀’ 등 근대 계몽주의 교육사상이 낳은 결실이었다. “어린이가 부모를 존중하게 만들려면 부모도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크는 어린이도 성인과 동등한 이성적 존재라며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주문했다. 특히 체벌을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 방법”이라며 금기시했다. 루소는 “체벌에 의해 훈련된 사람은 노예근성만 배우게 된다”며 어린이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동 체벌 금지는 폴란드의 조치로부터 200년 가까이 흐르도록 무늬뿐인 제도로 존재했다. 최초로 실행에 옮긴 건 1979년 스웨덴이었다. 유엔은 그 10년 후인 1989년 ‘모든 형태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한다’는 내용의 아동권리협약을 마련했다. 현재 지구촌의 아동 체벌 금지국은 50여 곳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그 명단에 한국은 없다. 유엔 아동인권위원회가 1996년, 2003년, 2011년, 2019년 등 모두 6차례에 걸쳐 관련 법률과 규정 개정을 통한 체벌 금지를 권고했으나, 우리는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 사이 지난 1일 9세 남자아이가 계모의 학대로 여행가방에 갇혀 숨졌고, 지난달 29일에는 계부와 친모에 의해 수년 간 폭행을 당해온 9세 여자아이가 상처투성이 몸으로 발견됐다. 지난해 9월에는 5세 남자아이가 손발이 묶인 채 계부한테 폭행당하다 숨지기도 했다. 이런 아동학대가 2018년에만 총 2만4604건 발생했고, 이 가운데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77%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방치해오다 이제서야 민법상 자녀 징계권을 삭제하는 체벌 금지 조치에 나섰다. ‘사람 죽은 뒤 약 짓기’인 셈이다.

어린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 인격체라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 상식이 한국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법치도, 정치도, 시민의식도 아동인권보호에서만은 아직 미개함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는 자유롭게, 오직 자기의 소질에 따라 항상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게,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반자연, 이른바 관습과 규칙 등은 거부해도 좋다.” 루소는 어린이의 자유에서 인류의 발전을 봤다. 진정 어린이를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어린이를 폭력 등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