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기업의 경영세습은 당연시된다. 상당수 재벌가에서 이미 창업주 삼대를 넘어 사대로 경영권이 넘어간 곳도 많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회사가 망하거나 매각하는 경우를 빼면 거의 모든 기업의 경영권은 자식에게 넘어간다. 심지어 회사 주식의 절반 이상이 시장에 풀린 상장사도 경영세습은 예외가 아니다. 능력이나 자질에 상관없이 경영세습이 이루지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해 주목받았다. 본인이 경영승계 문제로 검찰수사와 재판을 받는 상황인 데다, 나이가 50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진정성 논란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경영세습이 당연시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매우 의미 있는 결단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대표 재벌인 삼성에서 경영세습 관행이 파괴되면 재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세습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경영세습이 ‘오너리스크’로 인해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리스크를 높인다는 주장도 있는 반면 ‘톱다운’ 방식의 경영이 기업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사람도 많다. 아직까지 우리 기업에서 경영세습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 본 적이 없으니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기업에서 경영권도 일종의 사유재산인데 외부에서 왈가왈부하거나 강제로 규제하기도 마뜩찮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이냐는 그들이 선택할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영세습을 위해 지불되는 기업 내부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기업 내부의 비용은 경영권 장악을 위해 벌이는 지분 확보 경쟁에 따른 출혈과 지배구조개편 명목으로 자행되는 회계 불투명이다. 경영권의 기반은 지분에 있기에 대주주들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 개인 자금력이 부족하면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해 지배구조개편 방식을 동원한다. 표면상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지만, 속을 들춰보면 계열사를 쪼개고 붙이면서 대주주 일가 지분을 높이는 작업이다. 상당수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오너 일가의 횡령이나 배임도 이런 무리수에서 비롯된다.
‘절세’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꼼수 상속’은 사회적 이익을 침해하는 명백한 반칙이다. 세법상 상속세는 재산의 절반이지만, 실제 재벌가의 유효 상속세율을 계산해보면 20%도 채 안 된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공제를 받거나 심지어 상속재산의 가치를 비정상적으로 할인한 때문이다. 일부 상장사에서는 상속을 앞두고 갑자기 실적 악화나 악재 공시로 주가를 급락시켜 상속재산 평가액을 줄이기도 한다. 자본시장법상 상속지분 평가는 상속 시점을 전후해 석 달 평균치를 적용하는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것이다. 이런 주가 낮추기로 이 회사에 투자한 일반 주주는 영문도 모른 채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능력이나 자질에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묻지 마’ 경영세습이다. 사회적 물의를 빚었거나 횡령 범죄를 저질러도 오너의 자식이면 경영승계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파렴치한 갑질 행위도, 낯 뜨거운 사생활 범죄도 심지어 마약중독도 경영승계에는 걸림돌이 안 된다. 검증도 없이 최고경영자에 오른 결과는 기업의 지속성까지 위태롭게 한다. ‘오너리스크’의 근본적 원인은 막무가내식 경영세습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경제의 공동체 조직인 기업의 경영권을 사유물처럼 농단한 결과다.
사기업의 경영세습을 부정적으로만 단정할 것은 아니지만,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오너 일가족의 경영세습은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행법은 등기이사에 대한 자격요건을 규정하지만, 이로는 부족하다. 사실 우리 기업에서 등기이사와 미등기이사의 권한 차이가 거의 없다. 오너 일가족이 등기이사든 아니든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 전혀 통제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의를 빚은 오너 가족의 경우 원천적으로 경영 참여를 배제하는 강력한 규제방안이 있어야 한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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