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常綠樹). 계절에 관계없이 잎의 색이 항상 푸른 나무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지만, 상록수(evergreen tree)란 단어는 말 그대로 항상 녹색의 싱그러움을 연상케 한다.‘아침이슬’의 작곡자 김민기와 양희은의 노래로 유명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러 더욱 널리 알려진 노래가 ‘상록수’이기도 하다.

손녀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푸르른 나뭇가지 드리운 아래를 달려가는 노 대통령의 사진을 많이 보았다. 상록수의 노랫말과 같이 그는 돌보는 사람 하나도 없는 이 땅에서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마음껏 푸르게 살다 간 대통령으로 많은 이에게 기억된다.

필자 또한 때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아니면 조금 전에 새긴 문신의 아픔처럼 부지불식간 그의 웃음 짓는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검찰청사에 들어서기 전 카메라 세례 앞에서의 그 씁쓸하고 황망했던 표정.

2009년 11월 부산의 문학평론가 박대현이 그의 첫 평론집 ‘헤르메스의 악몽(도서출판 신생)’을 펴냈다. 출판날짜가 2009년 8월 20일로 되어 있었다. 그해 5월 23일 노 대통령의 사망, 불과 몇 달 후이다. 책을 펼쳐 들고 서문에 해당하는 ‘악몽의 시간을 우는 혀를 위하여’를 읽어나가는 도중, 한 곳에 이르러 도저히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의도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그 문단의 전문을 인용한다.

“‘그’가 죽고 난 후 그가 투신했던 바위를 찾았다. 철학자 김상봉의 말처럼, 그의 죽음과 더불어 “한 시대가 끝났음”을 절감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시대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발자국은 유서가 가슴을 저미듯이 나의 발자국에 흡착되어왔다. 악몽의 현실은 더욱 선명해졌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모든 말들을 거추장스럽게 했다. 용산참사도 그러했지만, 특히 그의 죽음은 모든 말들을 부질없게 했다. 나는 그가 퇴비냄새 가득한 벽지의 고향에서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바랐다. 부분적으로 실패했을지라도 그는 가장 찬란했던 희망의 좌표였다.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많이 사랑했던 그가 떠나버린 이 악몽의 현실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의 죽음과 더불어 그와 함께 했던 과거와 그와 함께 할 미래 또한 사라졌다. 악몽의 현실만이 남았다. 나는 억울하고 분노하고 살의마저 느끼지만, 나의 언어는 한없이 무력하다. 이것이야말로 언어의 비참 아닌가. 나의 이빨은 언제 사용할 수 있는가.”

국제신문은 지난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전후해 많은 보도와 논평을 게재했다. 선거가 끝나고 5월이 되어서는 새롭게 구성된 제21대 국회가 제대로 좌표를 설정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라고 방향도 제시하고 채찍질도 했다. 예를 들면 시즌 1과 시즌 2에 걸쳐 비중 있게 보도한 ‘21대 국회 대해부’ 기획시리즈를 눈여겨보았다. 다만, 이 글에서는 새 국회 개원을 앞두고 우리가 ‘늘 푸르게’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와 언론의 역할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오래된 글 또 하나를 발췌 인용한다. 노 대통령의 죽음을 1년 반 앞둔 시점이다. 2007년 국제신문 12월 27일 자 김미선 논설위원이 참여정부 말기에 국제신문에 쓴 ‘노무현과 불편한 진실’이란 칼럼이다. 그대로 전한다.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이상의 증오, 살기마저 느껴지는 분노는 그가 우리 역사의 잊고 싶은 그 역린(逆鱗)을 끊임없이 들추면서 우리를 괴롭혀 온 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보기 싫은 진실, 이른바 ‘불편한 진실’을 보도록 끊임없이 들추어 왔다. 그 문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친일 청산의 문제이고, 그것에 기생하고 있는 대한민국 지배계층의 정통성의 문제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의식의 문제이다. 그것이 실타래처럼 얽혀서 이념 문제가 되고 남북문제가 되어 우리의 발목을 꼼짝달싹 못 하도록 만들어 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쉬쉬하는 침묵의 카르텔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은 참여정부를 외면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미선 논설위원의 칼럼은 깊게 울렸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뒤집어씌우기 식 언론’이 넘쳐나는 현재 상황에서 다시 한번 언론의 역할이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고 본다.

시인·독자권익위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