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온다. 흐른 땀을 씻으려고 샤워를 하면 헤어 드라이기 바람에 다시 땀이 나버리는 계절이 오는 것이다. 샤워에 쓴 시간과 노력과 수도요금이 무색하게 금세 이마와 뺨과 등과 가슴팍에 나는 땀을 보면, 괜히 머쓱해진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생각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짜증도 살짝 나긴 하지만 남을 탓할 순 없는, 오히려 부정할 수 없는 미세한 자책감이 들기도 하는, 그런 어이없고도 무안하고도 어색하고도 민망한, 샤워 후 땀방울 같은 이런 상황과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앞에서 썼던 ‘머쓱’이라는 표현이 무겁지 않으면서도 뜻도 적절해, 내 생각엔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우리 주위엔 머쓱한 일이 많은 것 같다. 내겐 5년 전에 본 첫 수능이 그렇다. 수능이 다가오니 심적인 압박도 커졌고, 문제를 풀다가 실수했을 거라는 생각에 방금 푼 문제를 다시 풀고 다음 문제로는 넘어가지 못하는 강박증도 생겼다.

수능 당일에는 심적 부담이 너무 심해, 금방이라도 긴장을 풀어버리고 배시시 웃으며 감독관께 시험지를 가져가 “아저씨 자동이요”라고 말해버리고 싶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시험은 망쳤다. 수능을 치르고 가족과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우울한 기분에, 그리고 가족들은 침체됐으면서도 날카로운 나의 눈치를 보느라 불판 위의 고기는 아무도 쉽사리 건들지 못한 채 각자의 속처럼 까맣게 타고 있었다. 고기는 타고 나는 아무 음식에도 손대지 않고 이런저런 복잡한 심정에 머쓱하게 핸드폰으로 만화만 스윽스윽 넘겨보고 있었다.

다음 해 수능에서 심리적인 문제를 잘 해결해 다행히 좋은 결과를 받아 지금의 학교에 왔다. 여기에서도 재수할 때처럼만 하면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아(결국 유급을 한 번 받기도 했고) 머쓱했다.

재수 때처럼 학업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고 성인으로서 마주하는 내 가족 문제나 인간관계, 진로 고민 등 여러 신경 쓸 거리도 많아졌다.

학업과 그 시스템에 대한 회의도 많았다. 우리 학과의 다른 동기들보다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수많은 회의와 선택과 고민 속에서 어느 한 방향으로도 추진력을 갖지 못하고 멈춰 있다가 학업 성적이 낮아져 유급을 했다. 지금은 복학을 했고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게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회의와 고민 속에 살고 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러 분께 여쭸봤지만 그분들도 모두 나처럼, 아니 나보다도 더, 각자의 삶에서 머쓱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중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그 친구는 몇 년 전 ‘머쓱’이라는 팀명으로 자기 친구들과 미술 전시를 열었다. 그는 ‘머쓱’이라는 말이 숨지 않을 용기를 줬다고 했다. 본인들의 힘으로만 준비해서 연 첫 전시인 만큼, 어딘가 어정쩡하고 많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끄러움은 줄여 전시 개최에 도전할 수 있게 해준 태도가 바로 머쓱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시와 작품이 별로일지라도 머쓱하다는 말로 훌훌 털고 나면 실의에 빠지지 않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머쓱함이야말로 젊을수록 더욱 가질 수 있는 철면피 같은 게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했다.

모두가 미끄러질 때가 있다.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있을 수도 있다. 서로가 알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면 다들 머쓱하다는 말로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으면, 하고 미약하게나마 바라본다.

여름이 온다. 쉽게 불쾌해지고 자신이나 서로에게 예민해질 수도 있는 계절이다. 항상 긴장하며 살 수는 없고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니, 불쾌한 일이 생기더라도 입으로 크게 숨 한 번 쉬어주고 뒤통수 몇 번 긁적여주고 “머쓱하네”라고 한 마디 뱉어주면, 어떨까. 자신에게도 서로에게도, 전기요금 때문에 에어컨은 못 되어주겠지만 미니 선풍기 정도는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동아대 의학과 재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