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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노무현의 마지막 꿈 /이노성

균형발전·국민통합 바람, 그가 떠난 지 11년째 요원

여당은 담대한 정신 잇고 야당은 더 큰 쇄신 이뤄야…반칙·특권 없는 세상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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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의 바람개비가 노란 물 안개를 피웠다. 아침햇발이 화포천 품은 들녘을 감싸고 도는 사이, 하나 둘 국화를 손에 쥐고 아주 작은 비석으로 향했다. 눈물이 넘쳤던 1년 전과 달리 올해 추모객들은 “고인을 담담하게 마주 보려(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애쓰는 듯 했다. “장례식의 검정이 아니라 밝은 옷으로 ‘미래’를 이야기하자”던 다짐의 실천이었다.

토요일이던 2009년 5월 23일 아침. 청와대를 떠나 봉하로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욕보이기식 수사에 운명처럼 떠났다. 그가 없는 11년간 정치지형은 급변했다. 노무현의 사람들은 ‘폐족’의 시간을 지나 정치 주류로 복귀했다. 지역주의 벽에도 균열이 생겼다. 2016년 총선에선 ‘바보 노무현’이 끊임없이 좌절했던 부산 울산 경남(PK)과 대구에서 진보 당선자를 배출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한발 더 나아가 PK 단체장을 싹쓸이했다. 지난 4·15총선은 말 그대로 ‘노무현의 동지’인 문재인 대통령의 시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뿌린 남북 화해의 씨앗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암흑기를 거쳐 이제 싹을 틔우려 하고 있다. ‘하노이 노딜’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 정상회담으로 쌓은 남북의 신뢰는 70년 얼음장벽에 희망의 불씨를 심었다. 이제 국민 57.6%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고 평가(리얼미터 5월 1일 발표)한다. GDP도 세계 10위권이다.

그래도 그가 던진 숙제 상당수는 여전히 미완이다. 2003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 담긴 키워드는 국민통합·균형발전·동북아시대 3가지다. 특히 국토 균형발전은 아쉬움이 크다. 부산을 포함해 혁신도시 10개가 들어섰으나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선거철에만 등장하는 공약(空約)이 돼 버렸다. 수도권 집중이 다시 강해지는 흐름마저 나타난다. 비수도권 대형 SOC사업은 ‘경제성 평가’라는 덫에 발목이 잡힌다. 동남권 관문공항과 하단~녹산선 건설이 대표적이다. 기획재정부는 국내로 U턴하려는 기업을 위해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완화하려다 지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공장총량제는 서울 인천 경기의 산업단지 면적을 일정 범위 이내로 억제해 비수도권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정책이다. 이제는 서울에 남아있는 정부조직과 국회의 지방 이전 같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 통합은 갈 길이 천만리다. 노 전 대통령이 말한 통합은 ①지역구도 완화 ②소득(계층) 격차 해소 ③노사화합과 협력 문화 ④소외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 ⑤양성평등이다. 아쉽게도 특정 정당의 지역독식을 막기 위해 추진된 선거제도 개혁(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은 여야의 정치적 계산 속에 변질돼 ‘위성정당’이라는 괴물을 낳고 말았다.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49만8000원으로 1년 전과 차이가 없다. 반면 5분위(상위 20%) 가구 평균 소득은 월 1115만8000원으로 6.3% 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임시·일용직과 노인 일자리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점을 고려해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 곁에 임계장(임시계약노인장)이 넘치는 한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는 사회”는 요원하다. 다행히 격차 완화를 위해 “기본소득과 ‘사회적 경제’를 어젠다로 선점하자”는 주장이 진보뿐 아니라 젊은 보수 정치인 사이에서 나오는 것은 반갑다.

정치 갈등이 치유되기 어려운 건 상대가 있어서다. 누군가 손 내밀어도 다른 세력이 뿌리치면 방법이 없다. ‘180석 슈퍼여당’은 대연정을 제안한 노 전 대통령의 담대함을 배워야 한다. 선거제 개혁에도 나서야 할 때다.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바다에서 하나가 되는 내일(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위해서다.

야당은 더 큰 쇄신을 보여야 한다. 올해 유권자는 ‘발목만 잡는’ 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새 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차”가 된 것은 보수다. “아스팔트 극우에 휘둘린다면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까지 6연패 예약(김세연 의원)”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진보우위의 시대’라는 심판을 받고도 그대로라면 미래가 없다. 그나마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추도식에 참석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꿈인 ‘통합’을 말한 것은-방법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의미가 있다.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꿈꾼 ‘노무현 정신’은 기득권에 맞서는 용기와 시대 정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일 것이다. 그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선 사회통합에 바탕을 둔 강력한 보수 가치가 출현하길 기대한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사 일독도 권한다. 새가 오른쪽으로 날려면 왼쪽 날개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국 부국장 ns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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