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어린이집 교실은 우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엄마와 처음 떨어진 아이들이 ‘신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선생님과 친구들, 낯선 교실, 엄마마저 없다는 두려움 탓일까, 울음이나 돌발 행동으로 ‘분리불안’을 표현한다. 돌고래 소리를 내며 우는 아이, 엄마 찾아 용수철처럼 밖으로 튕겨 나가는 아이, 장난감을 집어 던지는 아이 등.

아이들을 달래고, 안아주고, 업어주다가 유독 문 앞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가 눈에 띈다. 엄마가 올 거라고 다독여도, 간식을 먹자고 해도, 장난감을 쥐여 줘도 아무 반응이 없다. 너무 울어 지쳐 보였고 눈물이 말라 얼굴에 자국이 남았다. 낮잠 시간에도 아이는 잘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저러다 아플까 봐 염려스러워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는 엄마의 숨소리도 아는지 그제야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자 옆에 있었던 엄마가 보이지 않아 불안해한 적이 있었으니까.

두려움의 시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면서 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치매를,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자리보전하고 있을 무렵, 간병으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나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진 듯 굴었다. 아버지 간병만으로도 힘든데 엄마마저 아프다고 성화니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 즐겁지 않은 건 당연했다.

밤새 엄마가 앓는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아팠다. 휠체어를 밀며 산책 나가는 것도, 택시 타고 목욕하러 가는 것도, 밥상을 차리는 것도, 내겐 다 버거운 일이었다. 아버지를 살피는 만큼 엄마를 살갑게 살피지 못했다. 아버지 위주다 보니 엄마는 늘 뒷전이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지인이 두유 한 통을 사 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분이 같이 드시라고 사 온 거였다. 엄마가 두유 하나를 먹으려고 할 때였다. “그거 아버지 드시라고 사 온 거잖아, 엄마는 나중에 내가 사 줄게. 그러니까, 먹지 마요.” 괜스레 또, 짜증이었다. 엄마가 내 눈치를 살폈다. 들고 있던 두유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홍역에 걸려 누워있을 때 나를 품에 안으며 밤새 간호해 주던 엄마. 금방 지은 밥과 반찬을 싸서 점심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가져다주던 엄마. 공부보다 건강이 먼저라고 막내인 나를 더 살뜰히 챙겼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내 몸 하나 귀찮다고, 두유가 뭐라고, 생색을 내며 정 없이 굴었던 건지. 참, 나쁜 딸이었다. 회식을 하고 돌아오던 그날 밤, 엄마는 잠드신 채로 가셨다. “엄마 그늘에서 벗어나 이젠 좋니?” 나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행복했던 걸까?

연미사(위령미사)를 본 지도 세 번째다. 나는 고개 숙여 기도했다. 엄마에게 용서를 구한다. 영성체 전, 두 팔을 벌린 채 기도 드리는 신부님의 모습이 보였다. “주님, 신앙의 보람을 지니고 저희보다 먼저 평안히 잠든 교우 ‘김아나다시아(엄마의 세례명)’를 생각하소서.” ‘김아나다시아’라고 부르는 신부님의 목소리에 한 아이가 돌고래 소리를 낸다. 엄마가 올까 아이는 문 앞에서 꼼짝 않고 서 있다. 다시는 아픈 자신을 간호해주지도, 자신을 위해 따뜻한 도시락을 가져다주지도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빈자리가 아직도 아프고 허전하다. 작은 지혜로는 잘 모르겠다. 그 이유를… . 세월이 지나면, 그때는 이해하게 되려나. “만약 나에게도 다음 생이 있다면/ 한 번만 한 번만 더 당신 자식 되고 싶지만 / 어머니 또 힘들게 할까 봐 바랄 수가 없어라.” 박구하 시인의 ‘어머니1’ 시조가 가슴 절절하게 다가온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엄마 자식이 되고 싶다. 엄마에게 가는 길, 두유와 국화 두 송이를 샀다. 한 송이는 엄마를 위해, 한 송이는 엄마 옆을 지키고 있는 98년생 황 군을 위해서. 봄나들이 가듯 마음이 설렌다. 꽃의 향기에 콧등이 시큰거린다.

내일이면 역시나 우는 아이들로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다 채워 줄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꼭 안아 주어야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