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조선업체 이마바리조선과 2위 재팬마린유나이티드조선이 자본·업무 제휴를 통해 컨테이너선·LNG운반선 등을 공동 설계하고 영업하는 데 합의했다. 합병에 버금가는 제휴이며, 두 회사는 설계기술을 공유하고 상선 건조 체계를 효율화하게 됐다.

중국은 2019년 11월 1·2위 국영기업인 중국선박공업과 중국선박중공을 합병한 중국선박공업그룹을 출범했다.

클락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이들 두 중국 기업집단의 연 매출은 2018년 기준 85조 원 이상이니 한국 3대 조선사 매출합계의 2배를 웃돈다. 세계 최대규모 조선산업체 간 합병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앞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선언했고 그 후속절차를 밟는 중이다. 합병으로 규모를 키우고 유사 분야 통폐합을 통해 불필요한 경쟁을 줄여 원가와 수주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조선해양산업의 글로벌 전략이 된 셈이다. 잘못된 전략은 아니다. 다만, 수주량과 조선산업 경기 그리고 기업경쟁력의 일차적 인과관계만을 바탕으로 전략을 설정할 때 맞닥뜨리는 위험성도 있으니,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자.

과학기술사적 시각에서 볼 때, 산업혁명이 농업혁명을 대체하는 데 어림잡아 6000년 정도 걸렸다. 조직적인 정착 농경 시작을 ‘농업혁명’으로 보고, 면직산업에 증기기관이 투입된 시기를 ‘1차’ 산업혁명으로 기준 잡을 때 그렇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저명 농경제학자 맬서스는 기술 발전과 인구 증가, 식량의 상관관계를 덫에 갇힌 악순환(맬서스의 덫)으로 표현하며 저서 ‘인구론’에서 격동과 희망의 시대에 오히려 인류의 멸망을 예측했다. 오랜 기간 완성된 최고 수준의 식량 생산기술이 있어도, 식량 증산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못 따르니 결국 굶어 죽는다는 예측이었다. 인류 생존을 식량 공급 가능 여부의 문제로만 인식했던, 즉 ‘기술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배제한’ 편향적 농경제학 시각에서 출발한 맬서스의 오류였고, 결국 자신의 전문 분야인 농업의 쇠퇴를 예측하지 못했다.

유사한 사례. 네트워크 시대와 4차 산업혁명 논의는 ‘반도체 기술’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얼마 전까지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업계의 불문율로 통했다. 메모리 칩 능력이 18~24개월에 약 2배가 된다는 기술개발 속도에 관한 법칙이다. 하지만 반도체 경전이라고까지 불리던 이 법칙은 공식적으로 폐기된다. 작아지는 기판 속에 회로를 넣을 때의 발열 문제와 매번 새로운 생산설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생산성이 문제였다. 모바일 컴퓨터 시대와 이를 지탱할 새 기술의 필요성을 예측하지 못했던 무어의 오류.

맬서스와 무어는 당시 최고 호황을 구가하던 산업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오피니언 리더들이었고, 역설적으로 변화한 환경 속에서는 그들의 예측이나 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진정한 의미의 ‘혁명’은 고정된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기술의 상용화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증기기관을 발명해 산업혁명에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제임스 와트의 업적을 요약한다면, 기술 개선과 보급을 통해 상용화·산업화의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노력이다.

와트는 증기기관 최초 개발자는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그의 시도가 그를 증기기관의 아버지로 불리게 했다. 이미 탄광 배수장치로 쓰이던 뉴커먼엔진 분리응축기의 효율 개선 작업 그리고 개량된 엔진을 탄광 배수장치에 국한하지 않고 면직공장에 도입한 시도. 대부분 사람이 생각조차 못 했던 와트의 엄청난 시도였다.

선박 수주 증가는 조선산업 호황으로 이어지고, 수주가 줄면 조선소 일감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조선산업 호불황을 얘기할 때 수주량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하지만 이 순환구조에는 ‘선박을 주문해 수요를 창출하는’ 발주처의 역할이 빠진 맹점이 있다. 수주가 없으면 일감이 없다는 고정된 사고에 함몰된, 또 다른 버전의 맬서스 또는 무어의 오류다.

지금 세계에는 새로운 에너지 수요가 나타난다.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는 흐름 앞에서 ‘여기까지 조선산업, 저 범위는 해양산업, 이 분야는 항만산업이라는 고리타분한 영역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탄광설비를 개량해 면직산업에 적용하면서 산업혁명이 시작됐듯, 축적된 조선산업기술은 무한한 형태로 차세대 에너지산업에 적용될 수 있고 이를 계기로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정부든 업계든 스스로 발주처가 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조선산업의 수주와 건조 순환사슬에 이를 끼워 넣어야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새로운 산업수요를 이끌어 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