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 깨어있기 위한 훈련은 생각지 않던 때 시작되었다. “그럼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열린 마음만 있다면 괜찮아요.” 인도네시아 발리 전통의상을 입고 있던 자그맣고 귀여운 얼굴을 한 아가씨가 내게 꽃을 건네며 말했다. 그녀가 정성껏 준비한 꽃에선 부드러운 향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꽃을 들고 제단으로 향했다.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잎 위에 향을 올려둔 뒤,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 첫마디를 이용해 플루메리아 꽃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손목을 돌려 천천히 둥근 원을 그리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나를 둘러싼 열대의 키 큰 야자나무와 넓은 극락조화 잎사귀가 동쪽으로 떠오른 태양을 향해 기쁨의 몸짓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발리의 예술과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우붓(Ubud)에 머물 때의 일이다.

아침 요가 수련을 마치고 ‘차낭사리’ 라고 하는 발리인들의 전통문화를 배우던 날이었다. 코코넛 잎을 길게 잘라 이어 붙여 섬세한 접시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다양한 빛깔의 열대 꽃을 조금씩 나누어 담았다. 꽃 중앙에는 ‘판단(Pandan)’이라고 하는 초록색 잎을 올리는데 모든 꽃은 제각각 신의 이름을 대신하고 있었다. 발리 섬에서 볼 수 있는 이 의식은 사원을 비롯한 각 가정과 일터, 심지어는 길 위에서도 볼 수 있는 발리인들의 아름다운 일상이다.

처음 보았을 땐 꽃이라서 너무 좋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그들의 전통이 수고로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은 꽃들을 소복이 담아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는 이 시간을 매일 가지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반복되고 끊임없이 변하는 모든 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을. 뜨거운 적도의 태양 아래서 자라나는 수만 가지의 식물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충실한 삶으로 이어가게 했다.

이렇듯 크고 작은 의식이 가정과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한 발리에서는 재앙이 닥쳤을 때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대규모 정화의식을 치른다. 재앙이 닥쳤다는 것은 세상이 혼돈에 빠져 우주의 저울이 잘못된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알아차리고 균형과 조화를 회복하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리인들의 오랜 전통과 믿음마저도 코로나19 사태에서 조심스럽게 금지되었다. 그 대신 안전하게 각 가정에 머물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재앙을 이겨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관광객이 사라진 발리 섬은 그 어느 때보다 자연의 회복이 빠르게 진행되고 고요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발리인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코코넛 잎으로 차낭사리를 만들고 꽃을 담아 섬의 일상과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상황은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지금 우리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모든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긴 통로를 지나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이미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대기오염으로 가려져 있던 히말라야 산맥이 150㎞ 밖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았고, 황사먼지로 뒤덮인 어두운 하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지구의 숨소리도 함께 듣고 있다.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할 해로운 일들은 바꿔야 할 이유가 생겼다. 늘 생각만 하던 나만의 특별한 ‘루틴(Routine)’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의 두려움과 어려움으로 힘든 이웃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굳건히 이겨내면 좋겠다.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어진 지구의 저울이 다시 균형과 회복을 되찾아 그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길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조용한 아침, 환한 태양이 방 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화병의 물을 갈아준 뒤 그 앞에 앉았다. 4월이 되자 더욱 부드러워진 바람의 모서리가 저 멀리 바다의 파도를 일으키고 라일락꽃의 향기를 더하고 미련 없이 떨어진 벚꽃 잎을 휘감아 가만히 앉아 있는 나의 빈 어깨 위를 지나갔다. 나는 태양을 향해 등을 곧게 펴고 두 팔을 가볍게 무릎 위에 올린 뒤 낮은 나무가 되어보기로 했다.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아침의 태양이 나의 정수리로 흘러 들어왔다. 나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데려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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