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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토렴은 돼지국밥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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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4-15 20:37:0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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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정을 해보자. 미국에서 햄버거를 손으로 들고 먹는 게 불편하니 접시에 따로 담자고 주장한다면? 일본에서 손으로 밥을 쥐고 생선을 올리는 과정이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밥과 생선을 따로따로 제공한다면? 아마 보통의 미국인 일본인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분노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분노하는 사람도 없다.
돼지국밥 한 그릇. 토렴은 필수다.
지난해 5월 대만 여행객이 부산 서면 돼지국밥골목에서 촬영한 토렴(그릇 안의 밥에 육수를 여러 번 끼얹고 따라내는 일) 영상이 화제가 됐다. 토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 외국인 눈에는 불편해 보였던 것이다. 급기야 구청과 부산관광공사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국밥 조리법이 비위생적이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반향은 컸다. 구청은 개선책을 마련하겠노라 발표했고, 여러 언론에서 다뤘다. 그 뒤 몇몇 돼지국밥집이 따로국밥을 제공했다. 이전부터 전문가 사이에서는 돼지국밥 세계화를 위해 따로국밥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국밥의 사전적 의미는 ‘끓인 국에 밥을 만 음식’이다. 그 자체로 완전한 음식이다. 국과 밥을 따로 제공하는 따로국밥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형용모순이다. 햄버거는 번(빵)과 패티(고기) 조화가 관건이다. 요리사는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이 만든 패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번을 택하거나 직접 굽는다. 스시는 샤리(밥)와 네타(생선)의 조화가 관건이다. 밥의 찰기와 경도가 숙성된 생선의 탄력과 이질감이 없어야 한다. 이를 최종 조율하는 것은 요리사의 경험과 손의 감각이다. 그래서 스시는 손으로 쥐어 마음을 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딱딱한 쌀이 말랑말랑한 밥이 되는 과정을 호화라고 한다. 쌀이 가진 아밀로스 분자는 단단하게 결합된 조직인데 열과 수분이 침투하면 서로 분리되고 부풀어 올라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갓 지은 밥을 상온에 두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아밀로스 분자는 원래대로 단단히 결합하는데 이를 노화라 한다. 즉 토렴은 노화된 밥에 뜨거운 국물을 끼얹음으로써 다시금 호화를 촉진하는 과정이다.

전기 에너지로 밥을 자동으로 짓는 전기밥솥이 처음 상용화된 것은 1952년이고 보온밥솥이 상용화된 것은 1965년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전기밥솥은 가마솥 밥 못지않는 밥을 지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보온기술은 밥의 온도만 유지할 뿐 밥이 노화되는 현상까지는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 조상은 토렴을 통해 이미 수백 년 전 이를 해결했다. 토렴은 이외에도 밥의 전분으로 국물의 밀도를 높이고 국밥을 가장 먹기 좋은 온도인 75~80도로 유지하는 역할까지 했다.

토렴을 포기하는 것은 돼지국밥에서 하나의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다. 국밥의 정체성과 토렴이 가진 순기능 전부를 포기하는 선택이다. 따라서 토렴이 생략된 국밥은 국밥이 아니다. 따로국밥은 그냥 ‘돼지국백반’일 따름이다. 나는 백반이 아니라 국밥을 원한다.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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