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상인이 “살 테면 사고 말 테면 말라”며 손님의 물건 설명 요구에 퇴짜를 놓는다면 어떨까. 아마 대다수는 어처구니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게 틀림없다. 선거를 보름 앞둔 21대 총선 정국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총선 후보들이 언론사가 개최하는 토론회에 참여를 거부한 것이다. 토론회는 공직선거법이 보장하는 유권자의 알권리 보장 제도다. 그런 중요한 자리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외면하니,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견을 뚜렷이 밝히고 판단을 구하려는 정책선거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 지역 방송사가 기획한 ‘기장군 총선 후보 초청 토론회’가 한 후보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다른 지역 방송사가 주최하려던 민주당·통합당·정의당 3당 부산시당위원장 토론회도 물거품이 됐다. “후보 전원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요구했는데, 양자 토론 방식으로 결정됐다.” “참석하는 토론자가 격이 맞지 않는다.” 둘 다 불참 사유를 밝혔지만, 유권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합당하진 않다. 유권자의 알권리보다 후보 개인 문제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이러고서도 시민의 대표를 자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토론회 불참은 고질적 병폐다. 2016년 20대 총선 때도 토론회 불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바 있다. 법정토론회 불참에 따른 부정적 평가와 400만 원의 과태료까지 기꺼이 감수했다. 그래도 불참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계산이었다. 그때도 “전국 유세 지원” “선거운동시간 부족” 등 온갖 불참 사유를 둘러댔지만, 유권자 알권리 보장이라는 대의 앞에선 역시 초라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토론 하나 못하면서 자신을 뽑아주길 바란다는 건 낯 두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깜깜이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후보가 토론회를 계속 기피한다면, 유권자의 선택은 자명하다. “유권자를 우습게 여기는 후보는 뽑지 않겠다”는 기피 부메랑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