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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의 그림산책] 소치 허련이 그린 도깨비 그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31 19:13:5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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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른들 앞에 가면 많은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개 머리에 뿔이 달렸고, 생긴 것은 우스꽝스러우며, 장난기가 많은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도깨비가 사람을 만나면 내기를 하기 좋아하여 수수께끼 놀음을 하거나, 힘겨루기를 좋아하여 씨름을 하자고 조른다는 것이었다. 씨름을 하게 되면 꼭 왼발을 걸어야만 넘어뜨릴 수 있다며 어른들은 장난기 어린 겁을 주곤 했다. 이런 이야기는 마을마다 꼭 있어, 친구끼리 자기네 동네 이야기가 맞다고 우기기도 많이 하였다. 도깨비는 그렇게 우리에게 무섭지만은 않은 친근한 것이었다.
소치 허련의 ‘채씨효행도’ 중 귀화전도.
한국 미술 속 도깨비 모습은 어떠할까? 아쉽게도 조선 시대 이전 회화사에서 도깨비 모습을 그린 그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내 좁은 견문으로는 도깨비 모습을 그린 작품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현대 들어 민중 목판화가 오윤(吳潤) 등이 도깨비를 그렸지만, 이들의 작품 속 도깨비가 우리 선조가 상상 속에 그리던 도깨비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조선 후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수제자로 유명한 화가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이 그린 도깨비 그림을 보았다.

그 그림은 1869년 허련의 나이 62세 되던 해에 채씨 집안의 부탁으로, 효자로 유명한 채홍념(蔡弘念)의 효행을 그린‘채씨효행도’ 중 한 장면이다. ‘채씨효행도’는 채홍념의 효행 중 ‘상진저육(常進猪肉, 아침저녁으로 고기 준비)’ ‘판시부미(販市負米, 쌀을 팔아 공양)’ ‘상분도천(嘗糞禱天, 대변을 맛봐 병 진단)’ ‘작지관혈(斫指灌血, 손가락 깨물어 피를 부모님 입에 물림)’ ‘귀화전도(鬼火前導, 도깨비불이 길을 안내)’ 등 다섯 장면을 그린 것이다. 마지막 장 ‘귀화전도’에 도깨비가 나오는데, 깜깜한 밤에 제사 지내러 가는 아들의 길을 안내하는 ‘불을 든 도깨비의 모습’이다.

그림 속 도깨비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며, 인간이 헤쳐나가기 어려운 길을 안내할 정도로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다. 또한 잡된 귀신이나, 저승사자처럼 인간에게 무서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곤경에 처할 때 나타나 도움을, 주는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신뢰감 있는 우호적 존재다. 이렇게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깨비라면 인간 세상 곳곳에 도깨비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도 크게 무서울 것 없겠다.

세상은 전에 없던 전염병 코로나19가 창궐했다. 허련 그림에서 도깨비불이 효자의 길을 안내하듯, 이 시대에도 멋진 도깨비가 나타나 바이러스 없는 세상으로 이끌기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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