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았지만 부산 제조업 경기는 한겨울보다 더 꽁꽁 얼어 붙었다. 생산 현장의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진 가운데 코로나19 악재까지 겹친 탓이다.

현재 기업인의 심정은 ‘얼음장’과 같다. 외환 보유고 고갈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은 1988년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한탄도 나온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코로나19 영향에 관해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는 참담했다. 기업체 절반 이상이 ‘조업 부진’과 ‘매출 감소’ 직격탄을 맞았다고 응답했다. 제조업 체감경기를 가늠하는 2분기 경기전망지수(BSI)도 금융위기 이래 최저치인 61로 추락했다. BSI는 100보다 낮으면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뜻이다. 100 이상은 그 반대다. 2분기 BSI는 1분기 83에서 22포인트나 급락했다. 한중 ‘사드 갈등’이나 ‘노 재팬’이 한창이던 2018년 1분기~2019년 1분기에도 BSI 지수가 80 이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 타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도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낮췄다. 말 그대로 국내 제조업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보다 더 나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힘겹게 가는 중이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 위축과 공급체인 붕괴에 내수 급감이라는 복합적 요인이 기업 경영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했다. 매출 감소가 낳은 불확실성이 커지면 ‘고용 절벽’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기업 실적부진이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만큼 부산 제조업 경기 활성화와 신규 투자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박한 때다.

제조업이 부산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대다. 고용의 질과 안정성은 서비스산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한 직장에서 쭉 일하는 ‘평생 고용’ 비율도 높다. 부가가치도 높아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도 한다. 그래서 부산 경제구조의 롤모델은 금융·서비스산업에 치우친 영국보다 제조업·서비스업 비율이 적절하게 안배된 독일이나 스위스를 꼽기도 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소재산업을 더 키우고 스마트공장(공장 자동화) 확산을 통해 생산성 향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독일 주방가구 제조사 ‘노빌리아’는 대표적인 스마트공장으로 꼽힌다. 노빌리아에서는 로봇이 가구 조립에 필요한 구멍 위치까지 데이터에 저장해 오차 없이 작업한다. 모든 부품에 전자태그(RFID)나 바코드를 부착해 하자가 발생해도 어떤 부품이 원인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노빌리아가 유럽 최대 주방가구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부산연구원도 ‘부산 제조업 혁신 플랫폼’ 보고서를 통해 스마트산업단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녹산국가산업단지의 스마트공장 도입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103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근간인 산업단지는 지역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노후화와 전통 주력산업 침체 영향으로 고부가가치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스마트 기술을 적용해 산업단지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부도 산업체의 의견을 수용해 2030년까지 스마트 산업단지 20개를 구축한다는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제시했다. 부산시도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산업단지를 스마트단지로 변화시킬 계획이다. 일례로 녹산·화전산업단지는 부산 주력산업인 기계부품·조선기자재 집적단지다. 교통·물류 인프라가 우수하고 주거시설도 갖춰 스마트단지 입지로 적절하다. 스마트기술 기반 제조혁신과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스타트업·신산업 육성 노력이 뒤따른다면 미래성장 동력으로도 손색없다.

부산시기계협동공업조합도 현장 맞춤형 스마트공장 전문가 양성을 위해 부산대·동아대를 비롯해 7개 대학과 손을 잡았다. 앞으로 ▷산업체 현장실무 전문가 강사 지원 ▷기술 융합과 협업능력 개발 ▷중소기업 취업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려 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고부가가치 기술집약산업은 대부분 수도권에 집적해 있다. 반면 부산 산업의 비중이 높은 서비스업은 대부분 저성장 단계에 직면했다. 부산의 연구개발 투자도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의 연구·개발(R&D) 역량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4위에 그쳤다. 낮은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혁신 활동도 부진하다.

부산 경제 도약을 위해선 ▷고성장·고부가가치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융합을 통한 생산체계 고도화 ▷기업 규모 확대와 혁신 역량을 강화해 생산성 주도 성장이라는 처방전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서는 스마트 산업단지에 역점을 둬야 한다.

부산기계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