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아시정구지의 추억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18 20:07:01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예전에, 이게 그러니까 언제 시작이 됐는지도, 언제 자취를 감췄는지도 모르는 까닭에 그냥 예전에. 김해 토박이 어르신들 사이에는 ‘정구지계(契)’라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
‘사촌하고도 안 농갈라 묵는다’는 아시정구지 무침.
계(契)라고 하니까 부추(정구지)를 재배하는 사람들끼리의 협업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닙니다. 초봄이 되면 자연에서 재배되는 정구지가 나기 시작합니다. 첫물 또는 초벌을 경상도 사투리로 ‘아시’라고 합니다. 자연의 시간이란 게 묘해, 같은 김해라도 아시정구지가 나는 시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한림, 주촌, 진례, 대저, 장유 등등 동네마다 약간 시차를 두고 아시정구지가 수확되었다고 합니다. 계원들은 아시정구지가 나오는 때를 경험으로 압니다. 그럼 돼지고기 몇 근 삶고, 막걸리 몇 말 지고 정구지 밭으로 향합니다. 밭에서 바로 뽑아 간단한 양념으로 정구지를 무칩니다. 그걸 돼지고기 수육에 곁들여 막걸리와 함께 먹습니다. 이런 식으로 며칠 간격으로 김해를 한 바퀴 돕니다. 그렇게 봄을 맞고, 그렇게 봄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풍류가 아니겠습니까.

정구지계가 단순히 호사가들의 풍류에 그쳤다면 솔깃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시정구지가 날 때를 맞춰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됩니다. 정구지계에는 지역 유지들이 십시일반 해서 농번기를 앞둔 농민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겨우내 생명을 보듬고 있다 봄기운을 머금고 자란 정구지에, 내 동네에서 얻은 돼지고기와 내 동네에서 빚은 막걸리만 한 궁합이 또 있을까요? 더군다나 아시정구지는 말입니다. ‘사촌하고도 안 농갈라 묵는다’ ‘아시정구지는 사위 안 주고 서방 준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맛과 효능이 각별하다고 합니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김해에 정구지계의 전통이 남아 있는지 수소문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전통이, 이렇게 기막힌 풍류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몇몇이 작당을 했습니다. 어느 해 봄, 김해에서 ‘정구지계’를 한번 부활시켜 보기로 했습니다.

김해 곳곳에서 부추가 나고 부추작목반도 있지만, 한림면에서 나는 노지 정구지를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한림면 농가를 수소문해 아시정구지를 넉넉히 뽑아 왔습니다. 거기에 갓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곁들였습니다. 정구지가 거기서 거기지 했다가 한방 크게 얻어맞았습니다. 아삭하되 질겅거리지 않는 식감, 대지의 향을 옴팡지게 쓸어 담은 듯 강렬한 향, 게다가 어지간한 고추냉이에 견줘도 좋을 알싸한 매운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향과 매운맛이 어찌나 오래가던지 종일 봄기운에 취해 있었습니다.

제게 정구지계 이야기를 전해주고 아시정구지 맛을 알게 해줬던 이는 서면 어느 골목에서 ‘바보주막’을 운영했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희철 대표님입니다.

“희철 선배, 어떻게 아시정구지에 막걸리 한 사발 하셨는지요?” 다시금 봄입니다. 맛 칼럼니스트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동래구에 붙은 선거벽보
  2. 2‘진격의 개미’ 주식계좌 한 달새 86만 개 늘었다
  3. 3[서상균 그림창] 바쁘고…기쁘고…나쁜
  4. 4민주당 ‘수영강 벨트’ 집안싸움에 원팀 흔들
  5. 5미국 확진자 20만명 넘어서…13일 만에 20배 급증
  6. 6화상통화로 면접시험 치뤄요
  7. 7김해갑 TV토론…후보별 ‘신공항’ 찬반 난타전
  8. 8144년 전통 윔블던 대회도 취소
  9. 9[도청도설] 슬기로운 ‘집콕’ 생활
  10. 10낙동강 하구를 국가도시공원으로 <8> 앞으로의 20년
  1. 14·13 총선 D-13, 여·야 공식 선거운동 시작
  2. 2코로나19 우려에도 한 표 행사하는 재외국민들…"무섭지만 투표는 꼭 해야"
  3. 3네이버, 오늘(2일)부터 급상승 검색어 중단…댓글 작성 시 실명 인증
  4. 4부산·경남 국회의원인데 … 40%가 강남에 아파트 보유
  5. 5부산 선거 벽보 3639곳 부착 시작…훼손하면 처벌
  6. 6코로나19 사태로 울산 기업경기전망지수(BIS) 세계금융위기 수준 하락
  7. 7재외투표 첫날 …해외 유권자들 소중한 ‘한 표’ 행사
  8. 8선관위, 전국 8만 6000여 곳에 후보자 선거벽보 게시
  9. 9 ‘결혼정보 무료제공, 2천만 원 결혼장려금 지원 등 공약에 대해 물었습니다
  10. 10문 대통령 "후반기 국가균형발전 정책 등 더 열심히 해달라"
  1. 1‘진격의 개미’ 주식계좌 한 달새 86만 개 늘었다
  2. 2한국은행, 양적완화 돌입…RP 5조2500억 첫 매입
  3. 3삼성전자 해외공장 25% ‘셧다운’…항공사 대량실직 현실화
  4. 4종부세 납부 대상자 긴급재난지원금 못 받을 듯
  5. 55대 은행 원화 대출 지난달 20조 원 증가
  6. 6주가지수- 2020년 4월 2일
  7. 7석 달간 물가 1%대 상승…코로나19로 식재료 가격↑
  8. 8금융·증시 동향
  9. 9부산항 입항 요청 크루즈 2척 중 1척 조건부 허용
  10. 10
  1. 1부산시, 인도네시아서 온 119번째 확진자 동선 공개
  2. 2정부 “사회적 거리두기 향후 방향,주말 이전 밝힐것” (종합)
  3. 3경남 김해, 영국서 귀국한 20대 코로나19 신규 확진
  4. 4마스크 공급량 안정권 들어서나…사라져가는 '마스크 줄'
  5. 5창원시, 코로나19 실직 청년 희망지원금 신청 접수
  6. 6이탈리아 신규 확진자 4000명대 유지…전문가 "확산세 정점 도달"
  7. 7부산경찰, 아동성착취물 및 불법촬영물 텔레그램 판매자 검거
  8. 8부산 지역사회 감염 10일째 '0'…자가격리자는 1247명
  9. 9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9976명…89명 늘어
  10. 10거제시, 정부 지원 제외된 소득상위 30% 에 최고 50만 원 지원
  1. 1코로나19 여파로 윔블던 취소…2차대전 이후 처음
  2. 2방구석 1열서, 함성 대신 댓글…랜선 스포츠 시대
  3. 3추신수, 마이너리거에 1000불씩 ‘특급 선행’
  4. 4144년 전통 윔블던 대회도 취소
  5. 5‘병역 특례’ 손흥민 해병대서 기초군사훈련
  6. 6
  7. 7
  8. 8
  9. 9
  10. 10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독일 통일과정 7대 과오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다시 읽어보는 한 ‘분단인’의 삶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다
제1부두, 이왕 보존하는 김에 제대로
기고 [전체보기]
더 힘들고 연약한 우리 아이를 위하여 /여승수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일상을 찾기 위해 /손현진
기자수첩 [전체보기]
억측과 갈등만 낳는 낙동강청 /임동우
양산 도로 침하 사고의 교훈 /김성룡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히포크라테스의 거울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귀하디귀한 악기 ‘편경’
강강술래와 농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인내의 시간, 염치를 갖자 /송진영
부산시의 뒷북 /하송이
도청도설 [전체보기]
슬기로운 ‘집콕’ 생활
재외국민 투표권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여든 살 어머니의 만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도다리쑥국
아시정구지의 추억
사설 [전체보기]
코로나 쇼크 골목상권 신속 지원으로 고사 막아야
느슨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긴장 끈 놓기엔 이르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국민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허황된 중국경사론
“한미동맹, 이상없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전쟁의 얼굴
호의가 낳은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의 도전과 한국인의 응전
한국 경제 회복탄력성이 관건이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가 지구촌에 던진 경고
코로나 최전선 지방정부엔 여야가 없다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사계’ 연주의 전설, 이 무지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의 르네상스
영화 ‘사이드웨이’가 말하는 것
특별기고 [전체보기]
‘도시국가’시대 市長의 역할 /정해문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소치 허련이 그린 도깨비 그림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20하프마라톤대회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