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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변하지 않는 것 /김이듬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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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2-20 19:46:00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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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이었다. 2월 중순인데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리다가 점점 그쳐가고 있었다.

그치지 않는 눈비는 없다. 잿빛 코트를 입은 사람이 책방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가 의자에 앉아 마스크를 벗었다. 무척 우울하고 지친 표정이었다. 재작년에 처음 봤을 때와는 사람이 전혀 달라 보였다. 신입사원이 되었다며 사회생활을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의 해맑고 광채 나는 얼굴이 아니었다.

“사랑이 변하나요? 사랑은 변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죽도록 사랑했는데 어떻게 변할 수가 있어요?”

연애를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는지, 애인에게 선물할 만한 책이 있는지 묻는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사랑이라니.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고 그 여파를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하며 마음 깊은 곳에 분노가 있다고 했다. 심지어 식욕 저하와 두통, 근육통 등 신체적 증상도 있다고 했다. 300일 가까이 설레며 거의 매일 만났던 사람이 변했다고 했다. 애인이 만남을 당분간 유보하자고 하며 연락도 끊어서, 도발적으로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결별 선언만 들었다고 했다.

그사이 해가 완전히 지고 창밖에는 달리는 차의 불빛이 어두운 가로수 사이로 명멸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들른 것 같았다. 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가 충격과 고통에서 잘 헤쳐나올 수 있는 조언을 찾지 못했다. 드높고 고결한 영혼이 있다고 해도 어떤 때는 무조건 들어주기만 해야 하리라.

세상은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확산하는 바이러스만큼 혐오와 공포도 늘어나는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강박적으로 손을 씻고 물을 마신다. 책방에도 방문객의 발길이 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애인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마주 보며 웃을 수 없어서, 저녁은 챙겨 먹었는지 물어보지 못해서 우주에서 가장 비참하며 사소한 존재가 된다.

전염성 있는 질병보다 무서운 불치병 환자가 된다. 어떤 특효약도 먹히지 않는 상태가 된다. 서른 즈음의 이 청년에게도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노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좀 괜찮아지셨어요? 이제 그 사람이 대가를 치를 차례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시면 곤란합니다. 작별 인사를 못 하더라도 잘 떠나보내야 잘 살 수 있어요. 사랑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잖아요.”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들로 상한 마음을 다독여주려고 했다. 왠지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한 사람을 추방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서 더 따스한 희망과 기쁨의 말을 찾아 머리를 굴렸다.

나는 책방지기니까 진정제나 치료제가 들어 있는 책을 찾아 서가를 서성거렸다. 책꽂이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었다. 시집, 소설책, 에세이집 등은 물론이고 과학이나 경제에 관해 말할 때에도 사랑은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 뭔지, 사랑은 변하는 건지, 사랑은 불변하는 건지, 사랑한 이후에는 어떠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사람 관계에서의 주체성과 활력을 찾으며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끔 하는 놀랍도록 지적인 책 한 권을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궁색해진 나는 세계적인 심리치료사의 책을 가지고 그의 앞에 놓았다. 그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책 읽을 기분이 아니라며 일어났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중심을 잡은 사람처럼 걸어갔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책방 바깥에 내놓았던 칠판을 들여놓았다.

내가 분필로 칠판에 써놓았던 잘랄루딘 루미의 시를 지웠다. 그 시의 전문은 이렇다.



어서, 그대여



그대와 내가



완전히 스러지기 전에



서로 열렬히 사랑합시다



다시 내일은 어떤 문구를 쓸까?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뿐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변한다”고 적어두면 행인들이 좋아할까?

시인·‘책방이듬’대표·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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