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 좋은 것이다. 동업자들이 상을 준다면 더욱 기쁜 일이겠다. 동업자는 협력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쟁자인 탓에, 경쟁자 사이에 흔히 생겨나는 시샘 따위를 이겨내고 다른 경쟁자를 인정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 체면이 있지 기왕 불러놓은 바에야 상 하나는 줄 테지, 텃세가 있어도 뭐 작품이 좋으니까 자국의 감독상이나 작품상에 버금가는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2개 정도는 받겠지.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에 6개 부문이나 지명되어 있어서 희망 섞인 추측은 자꾸 부풀었다. 그런데 웬걸, 상을 4개나 받았다. 빗나간 추측이 기껍다. 더구나 변방 취급하는 아시아 영화에 ‘최초로’ 최고상인 작품상까지 주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얼떨떨하고, 8200명이나 되는 투표인단 가운데 80퍼센트가 미국인이니 도리어 저의가 궁금한 지경이다.

미국 영화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아카데미상은 우리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지역 영화축제다. 봉 감독이 수상식 직전 인터뷰에서 아카데미상을 ‘지역 영화제’라 부른 것은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돌출한 발언이 아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영화계의 권력 지형에서 아카데미상이 갖는 의미는 문학이나 과학 분야의 노벨상과 맞먹는 것 아니던가.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 주는 상을 가지고 굳이 따질 일은 못 되지만 일본이나 중국의 어떤 감독, 어떤 작품도 이런 영광을 여태 누려보지 못했으니 느낌이 각별하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을 호명하며 찬사를 보낸 봉 감독의 작품상 수상 소감은 예절의 깍듯함도 훈훈했지만,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서 노거장에게 직접 말을 건네다니 싶은 격세지감에 더욱 감동이었다. 봉 감독 말대로 교과서에서나 보던 사람 아니던가.

봉 감독의 수상이 감동적인 데서 우리 현대 문화계의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이유를 뺄 수는 없다. 101년 세월 우리 영화가 겪은 풍상이야 구구절절 이야기할 것 없다. 다른 분야도 죄다 그랬지만, 특히 영화를 비롯한 문화는 일제강점의 해독에 순치되어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니었다. ‘일본어로 시를 쓰고 우리말로 번역했다’는 시인 김수영의 고백이 해방 이후 잠깐 동안의 개인적 경험은 아니다.

영화라고 별수 있었나. 소설가 안정효가 명명한 ‘할리우드 키드’들도 식민지를 이은 기지촌의 비극이긴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87년, 이 해의 의미는 단순한 숫자 구성 이상이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정치의 구심력에 사회의 모든 힘이 빨려 들어가던 이전과 달리, 6월 항쟁 이후는 힘들이 분화되기 시작했다. 정치의 한 축이던 대학에서 문화의 기운이 꿈틀댔고, 특히 영화에 눈뜬 이가 많아졌다. 민족 영화가 잠시 스쳐 지나갔고, 영화라면 보통 프랑스 예술영화를 가리키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면 다 좋다던 것이 일찍이 중학생 때부터 영화에 뜻을 두었다는 봉 감독의 대학 시절 분위기였다. 이 무렵 부산 프랑스문화원에 모여 영화를 보고 나서 밤새 토론하던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성사된 조직이 부산국제영화제라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닌가. 바야흐로 영화의 황금기가 도래할 참이었으나 굴곡은 심했고 벽은 가팔랐다. 들뜬 낙관주의는 불과 십 년 만에 끝났다. 1980년대 초반 거의 동시에 등장한 영국의 대처 내각과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천명했고 소위 ‘세계화’의 거친 해일이 1997년 마침내 아시아 금융위기로 우리에게 들이닥쳤다. 이후 우리가 건너고 있는 고통의 바다를 가득 메운 아비규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카데미의 선택에 미국인들조차 고개를 주억거린 이유도 봉 감독이 아픈 데를 건드린 탓이 크겠다.

그러나 봉 감독의 수상이 같은 시대를 사는 동년배라면 느낄 법한 사회사적 경험의 추인 내지 포스트기지촌의 이정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봉 감독이 위대한 마틴 스코세지에게 경의를 표하며 인용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니 그가 다시 한번 ‘삑사리’를 감행했다고 짐작하게 됐다. 이 말의 주인이 미국 독립영화 감독 존 카사베츠인지 노거장인지 때문에 삑사리란 말은 물론 아니다. 봉준호는 감독(작가)이지 영화학자가 아니지 않나. ‘기생충’ 수상 이유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보편적 경험에서 찾는 평가가 흔하지만 봉 감독이 말하는 의도는 뜻밖에 세간의 평가에서 미끄러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보편 추구가 아닌 창의(창조)가 자신의 지향점이고 역사적 경험의 선이 오롯이 응축된 작가(개인)를 통해서만 창조가 드러난다는 봉 감독의 신앙고백은 아니었나. 따라서 ‘기생충’ 개봉 당시 봉 감독이 미셀 세르의 ‘기식자(LE PARASITE)’를 재현했다는 생각은 접기로 했다.

이어서 문명이 인간의 생산물(Factum)이기 때문에 변혁은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