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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여행] 호의가 낳은 명작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18 19:07:13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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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好意)’는 상대에게 베푸는 친절한 마음씨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좋은 마음이지만 받은 호의는 되갚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프랑스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는 후원자에게서 받은 호의를 그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갚았다.
에두아르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하나’.
1880년 미술품 수집가이자 평론가였던 샤를 에프뤼시는 마네에게 정물화 한 점을 의뢰했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20대 초부터 그림을 수집했던 그는 원래 르네상스 미술을 좋아했지만, 그 무렵부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관심을 갖고 사 모으던 차였다. 마네는 그를 위해 하얀 아스파라거스 한 묶음이 녹색 채소 위에 놓인 심플한 정물화 한 점을 그렸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연상시키도록 배경은 까맣게 처리했다. 가로·세로 55×46㎝로 가정집 실내에 걸기 딱 좋은 크기의 그림이었고, 가격은 800프랑으로 정했다.

완성된 그림을 받은 에프뤼시는 너무나 기뻤다. 그림이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호의의 표시로 1000프랑을 작품값으로 보냈다. 마네가 부른 값보다 200프랑이나 많은 액수였다. 마네는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그림 실력만큼이나 유머 감각도 뛰어났던 그는 이내 붓과 팔레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작은 캔버스 위에 하얀 아스파라거스 하나를 큼지막이 그렸다. 어디선가 흘러나와 하얀 선반 위에 떨어진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A4 용지 반만 한 이 작은 정물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네는 이 그림에 메모 한 장을 끼워 주문자에게 보냈다. “(보내 드린) 아스파라거스 다발에서 하나가 빠졌네요.”

당시 200프랑은 오늘날 화폐 가치로 따지면 800만 원 정도다. 마음에 가격을 매길 순 없지만 마네는 후원자에게서 받은 호의를 화가다운 방식으로 갚은 것이다. 위트라는 이자까지 더해서. 주문자의 취향을 고려해야 했던 첫 번째 그림과 달리 두 번째 그림은 순전히 그의 호의로 자유롭게 제작됐다. 마네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화면을 메웠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밝은 톤으로 통일된 색채, 원근법이 무시된 경쾌하고 빠른 붓질, 세부 묘사의 과감한 생략 등 이전에 볼 수 없던 파격적인 정물화를 탄생시켰다.

이 그림을 본 문학가 조르주 바타유는 ‘다른 화가들의 정물화와는 다르다’며 정물이 ‘멈춰 있지만 동시에 살아 있다’고 극찬했다. 이후에도 마네는 극소수의 꽃이나 과일이 있는 절제된 구도의 작은 정물화들을 그려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물론 위트 있는 메모도 동봉해서.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색, 면, 구성 등 회화의 순수한 본질만 추출해낸 것 같은 그의 그림들은 20세기 모더니즘 회화에 한층 더 가까이 접근한 것이었다. 그것이 미술의 큰 혁신이었다는 걸 마네 자신은 알고 있었을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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