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세칭 ‘남매의 난’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타계한 조양호 전 회장의 큰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주주들과 손잡고 남동생을 회사 경영에서 내쫓겠다고 칼을 세웠다. 그는 미국 공항에서 승무원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비행기를 돌려세운 ‘땅콩회항’의 주인공이다. 그러자 조 전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와 작은딸 조현민 씨가 남동생을 편들며 싸움판에 끼었다. 그들은 낯 뜨거운 갑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이다. 국민에게 불편한 기억만 남긴 온 가족이 뒤엉켜 이번에는 경영권을 두고 진흙탕 골육상쟁을 벌이니 이런 막장 드라마가 또 있나 싶다.
요즘 재계에는 ‘경영 승계 공포증’이라는 말이 오간다. 경영 승계를 앞두었거나 추진 중인 재벌들 가운데 상당수가 오너 가족 내부의 경영권 분쟁의 위험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LG그룹처럼 별 잡음 없이 순탄하게 승계 작업이 이뤄진 곳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재벌은 총수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나거나 타계한 시점을 전후해 가족 간에 치열한 경영 분쟁 홍역을 치른다. 롯데나 효성은 총수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난 직후 경영분쟁 폭풍이 몰아쳤고, 한진가는 총수 타계 직후 분쟁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재벌가 경영권 분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드물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다국적 재벌에서도 가족들이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유혈극까지 벌인 사례도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 재벌에서 창업주 후손들의 경영권 분쟁이 빈번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재벌닷컴 조사 결과,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30대 재벌 가운데 절반 정도가 창업주 사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재벌가만 꼽아도 삼성가, 현대가, 롯데가, 한화가, 한진가, 두산가, 대림가, 효성가, 금호가, 코오롱가, 태광가를 들 수 있다. 이 중에는 경영권 분쟁이 몇 세대에 걸쳐 대물림된 곳도 여럿이다.
우리나라 재벌가에서 경영권 분쟁이 많은 배경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제왕적 권한을 가진 총수 중심 경영 지배구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업 지배구조를 보면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를 정점으로 주주총회, 감사위원회, 인사위원회, 경영이사, 직원총회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짜여 있다. 여기에 노조까지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이런 그물망 조직도 총수의 제왕적 권한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사와 재무를 틀어쥔 총수의 말 한마디는 곧 법이다. 결국 총수가 못 되면 경영에서 배제되니 죽고 살기로 경영권 쟁탈전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재벌가 오너들이 가진 기업에 대한 인식이다. 공공재가 아닌 사유물로 여긴다. 한진가 경영권 분쟁을 보면 이런 인식이 좀 더 명확해진다. 분쟁의 방아쇠를 당긴 조현아 전 부사장의 명분이 내건 “가족이 화합해서 경영하라는 선친의 유훈을 동생이 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총수가 남긴 유훈이나 조 전 부사장의 인식이 모두 사리사욕으로 가득하다. 조원태 회장 편에 선 이명희 씨와 조현민 씨도 “외부세력과 결탁한 점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이들 역시 주주를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겠다는 생각뿐이다. 주권의 70%가 시장에 풀려 있고, 자산의 90%가 사회부채인데도 자신들의 사유물로 생각하니 희극이다. 대한항공은 외국 항공보다 운임이 비싸도 국적기라는 생각에 일반 국민과 공무원, 기업들이 애용한 덕택에 성장했다.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사는 국민으로선 재벌가 경영권 분쟁은 ‘그들만의 리그’일지 모른다. 대통령이나 공직자를 뽑는 것도 아닌데, 딱히 창업주 후손 가운데 누가 경영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도 없다. 하지만 이를 그냥 지나치기엔 재벌이 차지하는 한국 경제에서의 위상이 너무 크다. 게다가 ‘제왕적 권한’을 가진 총수 중심 지배구조를 고려할 때 경영분쟁의 결과가 해당 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제라도 재벌가 경영분쟁을 막을 제도적 장치나 사회적 견제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경영분쟁에 따른 ‘오너리스크’가 예상되는 재벌이 너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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