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가야 본성-칼과 현’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약간의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가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대사의 보물창고인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를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체로 일반인이 기억하는 내용은 수로와 허 황옥의 로맨스뿐 왕후가 아홉 살 연상이었으며, 김해로 올 때 많은 금은보화와 20여 명의 식솔을 대동하였으며, 결혼 뒤에도 재산을 따로 관리하였고 사후에 무덤도 구지봉 동쪽에 따로 조성한 것 등의 중요한 문화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지금부터 2000년 전 가야의 발상지인 김해의 모습은 지금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낙동강의 거대한 물줄기와 동남해의 푸르른 파도가 서로 힘을 겨루어 승패를 가리지 못해 고요하고 잔잔한 만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경치를 구지봉에서 감상해보자! 구지봉에 서면 옛 김해만에 펼쳐져 있던 갈대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분성산 위에 서면 창원 주남저수지 일대부터 남으로 낙동강 하구 어귀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바라다보인다는 것은 필요할 때 정보를 획득할 수 있고 힘이 있으면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지봉이 구간(九干)이 모여 수로를 추대한 장소로 선택된 이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로가 왕으로 추대된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 수로와 관련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탈해다. 탈해는 도술 경쟁이라는 이야기로 표현된 일화에서 보듯 수로에 패한 인물이다. 탈해가 도술뿐 아니라 유사한 정치 경제적 바탕에서 경쟁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했는데도 신라에 가서 왕이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수로의 세력이 출발점에서는 신라(사로국) 초기의 그것보다 강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탈해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장장이가 등장하는데, 이를 수로의 등장과 맞물려 생각하면 수로 또한 선진 제철기술을 가지고, 김해 일대에 큰 고인돌을 만들며 살고 있던 이른바 구간 중심 사회를 통합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허 황옥의 도착을 알리기 위해 서로 경쟁한 일에서 비롯된 보트(용선) 경주 풍습도 있었다.

지금도 구산동에 남아 있는 300ｔ이 넘는 거대한 고인돌과 김해 율하지구 고인돌 등은 구간 사회만 해도 상당한 정치권력이 있었음을 알려주는데 이러한 구간들이 새로이 수로를 추대하여 가락국을 세운 배경은 당시로는 최첨단 소재인 철의 생산과 유통을 제외하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서 출발한 수로의 가락국은 필연적으로 낙동강과 연안항로를 지배하면서 왜와 한, 낙랑 등 머나먼 이국에 철을 수출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김해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웠을지 상상해보자. 지금까지 연구 성과로 보아 가락국이 성립된 시기부터 최소 400년간 왜국(일본)에서는 철을 생산하는 기술이 없었고, 단지 소재를 수입해 가공만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당시 가락국이 얼마나 풍요하였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는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언제나 쓰는 물과 공기와 함께 인간 생활의 필수품이 소금이다. 결국 김해는 당시 철을 매개로 소금과 해산물의 내륙교역을 통제한 중요한 물류중심지 역할을 했다. 고령과 창녕 등 이틀 사흘 거리에 해당하는 내륙 곳곳의 큰 무덤에서는 해산물, 심지어 오키나와산 조개로 만든 도구, 일본제 토기, 일본에서 잘 자라는 녹나무제의 배 모양 목관 등이 발굴돼 국내외에 떠들썩하게 소개된 적이 있다. 이 모든 물자의 중간 기착지는 김해였을 것이다. 김해의 가락국 시기 유적에서는 많은 일본제 토기가 출토된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수출과 수입 과정에서 가락국 사람들도 왜국 땅에 가서 살고, 왜인들도 다수 김해에 거주한 곳으로 보인다.

이런 큰 역사를 이루어낸 수로 집단의 무덤은 어디였으며, 지금의 수로왕릉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껏 30년을 공부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 단편적 기록일지라도 ‘기록에 있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을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니 기록되었을 것이다. 수로왕릉에 인접한 곳에서 기원 전후의 수장급 무덤이 발굴된 점과 김해 김씨의 명맥이 유지된 점은 지금의 수로왕릉이 결코 허묘가 아니라 제자리임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구간이 추대한 수로와 가락국의 실체는 모호했다. 하지만 대성동의 낮은 구릉에서 삼국의 왕릉에 뒤지지 않는 규모에 화려하고 다양한 부장품을 가진 무덤이 수십 기 발견되면서 가락국에서 금관가야로 이어지는 가야의 역사는 세상 사람의 눈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는 4월 1일 부산박물관에서 개막하는 ‘가야 본성-칼과 현 부산 전시’를 기대하셔도 좋으시리라.

부산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