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설날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24일 아침 라디오에선 가수 김창완과 아이유가 함께 부른 ‘너의 의미’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창완이 ‘산울림’ 시절이던 1984년 발표했던 노래를 30년 뒤 새카만 후배 아이유가 리메이크해 큰 화제가 됐던 곡. 아이유의 청아한 목소리와 피처링을 맡은 김창완의 묵직한 저음이 멋진 앙상블을 빚어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빼놓지 않았던 노래였다.
하지만 이날은 오롯이 노래에만 집중하기 힘들었다. 가사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너의 의미’는 설날 인사차 깜짝 출연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청으로 방송을 탔다. 아마도 진행자 김창완을 배려해 그의 노래를 고른 것으로 보였다. 노래 첫 소절이 흘러나왔을 때 이날 조간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한 기사가 오버랩됐다. “기소 쿠데타”. 전날 자신에 대한 검찰 기소에 발끈해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내뱉은 말이었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의문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최강욱의 이 말 한마디는 대통령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국어사전은 쿠데타를 이렇게 정의한다.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실제 최강욱은 검찰이 무지막지하게 검찰권을 휘둘러 정권 탈취라도 꾀한다고 보는 것 같다. “(이번 기소는) 과거 하나회에 비견될 만한 반헌법적, 반민주적 작태다”고 규정한 탓이다. ‘하나회’가 뭔가. 1979년 대통령 시해 사건의 혼란한 정국을 틈타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 탈취에 앞장섰던 군내 사조직.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기소를 강행한 수사팀과 이를 승인한 총장 역시 검찰 내 사조직쯤으로 보는 셈이다. 법무부 역시 이런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 그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날치기 기소”라고 맞장구쳤다. 서울중앙지검장을 ‘패싱’하고 검찰총장이 수사팀에게 기소를 직접 지시한 게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반란쯤으로 여기는 모양새다. 여차하면, 총장 감찰까지 할 태세다.
어쩌면 이런 격한 반응은 검찰의 업보(業報)일지도 모른다. ‘검찰공화국’.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자주 이렇게 불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검찰이 검찰권을 자기 입맛대로 휘두를 수 있었던 상황을 자조적으로 일컫던 말이다. 정의와 인권은 내팽개친 채 정권과 일부 기득권에 봉사한 검찰에 대한 국민 불만은 컸다. 지난 대선 때 ‘검찰개혁’으로 분출됐다. 상당한 갈등과 정치적 충돌을 거쳐 마침내 올해 초 그 결실이 맺어졌다. 공수처설치법과 검경수사권조정법 등이 바로 그것. 여기다 ‘추다르크’ 추미애 법무장관의 전격적인 검찰인사까지. 말 그대로, 검찰개혁을 위한 ‘민주적 통제’의 기틀은 거의 다 갖췄다.
그래도 여전히 검찰이 무서운 것일까. 아니면 이참에 아예 정권의 ‘마당쇠’ 쯤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상당수 여론은 후자에 방점을 찍고 있다. 검찰사무 총괄책임자인 총장 결정권보다 정권에 우호적인 지검장을 감싸고도는 법무부 모습에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 출석요구를 깔아뭉개고, 자신에 대한 기소를 “쿠데타”로 몰아붙이는 청와대 비서관에게서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읽는다. 최강욱이 누군가. 2004년 군검찰관 시절, 창군 이래 사실상 첫 육군본부 압수수색으로 장군 진급 비리를 밝혀내 법 위에 군림하던 성역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듣던 인물. 그랬던 그가 이젠 새로운 성역으로 떠오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겸허, 아니 자숙해야 한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공수처 “무소불위 권력 우려”와 관련해 이런 지시를 내렸다.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정작 객관성과 중립성의 위기라는 ‘불’은 검찰 ‘발 등’에 떨어진 형국이다. ‘촛불혁명’ 때 국민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목놓아 외쳤다. 이제 ‘검찰공화국’은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성역 없는 검찰 수사권을 장담했던 문 대통령. 비위 의혹 앞에 머리를 숙이기는커녕 검찰 머리 꼭대기에 앉은 듯한 청와대 비서관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부산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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