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산업계의 화두는 단연 제4차 산업혁명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기업이 보유한 기술·마케팅·판로 인프라를 융합해 산업계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나가는 ‘태풍의 눈’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인공지능·로봇공학·사물인터넷·무인운송수단·나노기술과 3차원 인쇄가 대표적인 ICT 기술이다.

4차 산업혁명은 18~19세기 증기기관 발명으로 일어난 1차 산업혁명과 ▷전기 발명(19~20세기)에 따른 2차 산업혁명 ▷인터넷 기술 발명으로 인한 3차 산업혁명에 이은 거대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다. 우리는 이미 모든 사물과 인간이 연결된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다. 빅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이 가전제품에 장착돼 가정까지 침투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경제뿐 아니라 사회·정치 영역에까지 스며들었다. ‘어차피 없어질 직업’의 반대편에선 이미 새로운 직업군도 등장하고 있다. 부산기계협동조합 회원사인 금성볼트공업은 주력제품(Rod Assay) 자동화 공정라인 12대를 운영하는 인력이 2명에 불과하다. 이제 제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아니라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바꿔 말하면 연구·개발(R&D)에 소홀한 기업은 바로 도태된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61조 원을 투자해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주력사업을 자동차에서 개인용 비행체(PAV)나 로보틱스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또 자동차를 매개로 금융상품이나 쇼핑·배송 같은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상이 변해도 사람이 경쟁력이다.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것은 분명 사람이다. 안타깝게 중소·중견기업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역량은 대기업에 미치지 못한다. 지역대학과 지역기업의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대학의 연구성과를 기업이 활용하는 기술 이전과 인력 교류·취업 연계라는 큰 틀의 산학협력 생태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다행히 부산에서도 올해 지역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된다. ‘2020년도 부산시 산학협력 연구·개발(R&D) 사업’이 그것이다. 부산시는 연구개발 씨앗기획이나 ▷대학 혁신연구단지(I-URP) 조성 ▷지역 특화기술 개발·확산, 개방형 연구실 운영 ▷지역 우수연구자와 기업이 함께하는 연계기술개발 사업에 예산을 지원한다.

연구개발 씨앗기획사업과 대학 혁신연구단지 조성은 지난해 10월 수립된 ‘대학 연구개발 활성화·산학협력강화 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신규 프로젝트다. 신진 연구자를 대상으로 AI를 포함해 4차 산업혁명시대를 헤쳐나갈 도전적 연구 개발을 장려하고 서부산권(제조업)과 동부산권(IT·모터·센서·로봇기술)의 전략산업을 고도화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혁신연구단지 조성은 대학의 연구인력·첨단장비·유휴공간과 기업의 인프라를 접목해 지속 가능한 산학협력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이다. 부산기계협동조합도 최근 부산대 기계기술연구원과 산학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퇴직 3년 이내 교수를 ‘산학지원 교수’로 임명해 기업이 신기술 개발과 상품화를 할 수 있도록 무료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또한 뿌리산업 집적도가 높은 기계산업의 고부가가치화·공정혁신·일자리 생태계 조성을 위해 ‘뿌리산업 통합지원체계(플랫폼) 구축’과 기술고도화 사업을 부산시 지원을 받아 수행 중이다.

민·관·학 협력은 일자리도 창출한다. 부산경제진흥원의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 ㈜리테일영은 ‘푸드팡’이라는 도매시장 식자재 직거래 모바일 플랫폼을 개발해 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원 받기 전에는 연 4억 원대이던 매출이 20억 원대로 커졌다고 한다. 대학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이 상품화해 ‘퀀텀 점프’를 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하면 청년의 ‘탈부산’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앞에 닥친 과제는 산학협력을 통해 미래유망 신산업을 발굴해 기존 제조업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제조업에 소프트파워를 결합해 고부가가치형 지식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연구개발 기능을 강화하고 일자리 친화형 산업을 키우는 환경도 가꿔야 한다.

현재 지역 중소기업들의 경영은 내수 침체 장기화와 인건비 상승, 글로벌 경기 둔화 등으로 녹록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대학과 기업의 연구자들이 더욱 긴밀히 교류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학협력을 진행해야 한다. 단순 생산형 기업에서 스마트 중소기업으로 탈바꿈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와 일자리 창출이 확대되는 부산을 기대해 본다.

부산기계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