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는 넓고 평온했다. 새해 첫 햇살을 머금은 바다는 그 빛을 다시 휘황찬란한 광채로 토해냈다. 그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들은 빛을 머금은 채 평화롭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새해 1월 1일 아침, 부산 가덕도 연대봉에 올라 바라본 바다 풍경은 팍팍한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우리도 저 배들처럼 어둠을 사르고 빛을 먹으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연대봉에 도착하기 전, 나는 새해 첫 새벽까지도 지난해의 일들로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과거에 묶여 새해가 와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지난 한 해를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들에 얽매였다. 그러다가 연대봉에 와서 짙푸른 바다에 쏟아지는 햇살을 보면서 새해 첫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하는 자신에 흠칫 놀랐다.

갓 배달된 신선한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향기와 맛을 음미하면서 제대로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되풀이되는 번잡한 일상사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연대봉에 오르며 비로소 나는 새해 첫 아침 시간의 의미를 짚어봤다. 지난 한 해를 헤쳐 오면서 주변과 부대끼느라 쌓인 피로감과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해묵은 감정들을 떠나보내고, 새해 첫 햇살이 비추는 드넓은 새해의 바다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다.

연대봉 앞바다를 비추는 큰 광휘의 햇살을 만끽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일이 과거의 후회에만 머문다면 과거 지향적 부정적 생각이 되겠지만, 돌이켜 새로운 발전을 위한 기초공사가 된다면 미래를 새로 설계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CEO는 바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지난 한 해 나는 너무 바빴다. 중요한 두 개의 직책을 맡아 동분서주했고, 긴급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의 작은 일까지 챙기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새해에는 우선 업무량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과감한 위임을 통해 업무를 직원들에게 분담하고, 나는 내가 꼭 담당해야 할 업무에만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위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직원을 신뢰하는 일이 먼저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겠다.

CEO에게 가장 큰 복은 인복(人福)이다.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세상을 다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일깨워주고, CEO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협력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CEO는 다른 욕심은 몰라도 사람 욕심은 부려도 좋을 것 같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좋은 인재를 얻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

김해문화재단의 한 해 업무는 지난해 연말에 업무예산서가 김해시의회를 통과하는 순간 확정됐다. 하지만, 큰 덩어리로 정해진 사업은 이제부터 구체화하고 세부실행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에 이달 초에 팀·본부별로 신년업무계획 보고회를 갖는다. 한 해 동안 시행할 다양한 사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잘 집행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직원들과 이마를 맞대고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개별사업의 계획보다 더 중요한 일은 10년 후의 미래를 바라보며 비전을 세우는 것이다. ‘재단 비전 2030’의 수립을 위해 지난해에 팀을 구성해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일도 이달 중에는 완료해 재단 창립 15주년을 맞는 다음 달 초에 비전선포식을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항로를 밝힐 예정이다. 또 산하 각 기관을 아우르는 재단 통합 CI를 개발해 이때 함께 발표할 계획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직원들이 선호하는 한글형 상징물을 개발해 발표함으로써, 김해문화재단의 대외이미지 변화를 꾀할 작정이다. 이런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던 내 나름의 경영과 사업 방침을 밝히고, 직원들의 의견도 적극 경청하는 자리를 가지려 한다. 서로의 생각을 알고 소통하는 것이 일의 출발이라고 믿는다.

새해 비전을 구상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하산 길도 끝나가고 있었다. 내가 구상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이 직원들의 손길을 거쳐야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직원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부족한 내가 그나마 CEO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직원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새해 첫 일출보다 더 가슴 벅찬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복을 주는 직원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문하며 신발의 흙을 털어냈다. 햇살은 바다 물결에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윤슬이 찬란했다.

김해문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