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서 자신과 자기 세력을 위한 편법과 비상식적인 일이 난무하는 게 다반사다. 자신들로서는 국가와 국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한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때론 상상 못 할 막장 코미디에 국민적 질타가 쏟아지지만, 그들 정치 권력은 목적 달성에 따른 진통으로 여긴다.

21대 총선을 앞둔 국회에서는 선거법 개정을 놓고 웃지 못할 코미디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총선 정국의 선거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여야 간 충돌은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에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모양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배제하고, 소수 야당과 함께 다수 세력을 형성한 뒤 각 당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지는 선거법을 마련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자 제1 야당이 필리버스터로 맞서는 형국에서 불거진 촌극이다.

필리버스터는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장시간 연설과 신상 발언 등을 통해 의사 진행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로, 보통 소수자 권리를 대표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2012년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도입된 이후 2016년 2월 실제로 이뤄진 적이 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여당의 테러방지법 제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38명의 의원이 나서 192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그때 필리버스터에 나선 야당 의원들은 긴 발언 시간을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그로부터 3년10개월 만에 국회에 필리버스터가 다시 등장했다. 여당과 군소 야당의 이른바 ‘4＋1협의체’가 내놓은 선거법을 저지하기 위해 제1 야당이 필리버스터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데 여당에서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 ‘묘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 같은 소수파와 다수파 동시 참여 필리버스터는 ‘4＋1협의체’에서 묘수를 낸 임시국회 쪼개기 때문이다. 25일 자정이면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 바로 다음 날 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선거법 표결 처리가 가능해 여당에서 이왕이면 법안 당위성을 알리겠다며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첫 주자로 나선 야당 의원은 기저귀까지 차고 나섰다가 두 번째 토론자가 여당 소속이라는 것을 전달받고 일부러 국민이 잠자는 시간대에 토론을 끝냈다.

어쨌든 ‘무제한 토론은 반대 측만 하던 관례’를 이번 국회가 깬 셈이다. 역대 최악이라는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찬성하는 다수파가 진행한 필리버스터를 두고 앞으로 뒷말이 무성할 게 뻔하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