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기업하기가 지금보다 참 쉬웠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에서 새로 등장한 사업이나 트렌드를 남보다 먼저 읽고 한국에 들여오기만 하면 대부분 성공하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이다.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용달차·노래방·상조 사업이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벤치마킹 전략이라고 부른다. 초기 벤치마킹 시대가 끝나면 다음에는 부동산을 통한 이윤창출이 이어진다. 새로 조성된 산업단지 부지를 싼값에 분양받아 공장을 이전하고 기존 공장부지는 아파트 단지나 상업용 시설로 비싸게 팔아 넘기는 것이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고,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파는 걱정은 별로 없던 시기였다. 그러한 황금시절이 지나면 어떻게 하면 더 팔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핵심 경쟁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2006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간된 ‘새로운 업(業)’의 발견이 대표적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경영에세이인 그 책에서 저자는 시계산업의 예를 든다.

‘1만 원짜리 시계나 1억 원짜리 시계나 정확한 시각을 알려주는 기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시계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무엇인가?’ 저자는 시계산업은 처음에는 정밀기계업이었지만 생산라인이 자동·기계화되면서 조립양산산업이 되었고 다시 브랜드와 패션산업으로 진화했다고 지적한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지적이 유효할까? 지금 시계산업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글로벌기업인 애플과 삼성·구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업의 본질’식 분석에 따르면 스마트워치는 10여 년 전 패션산업에서 이제는 헬스케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TV광고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워치에서 시각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조깅을 하면서 전화를 받고 체조·자전거·수영을 하면서 활동량과 심박수·혈압을 측정하고 메시지도 읽는다.

올해 3분기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이 각각 1, 2위를 차지한 가운데 갑자기 구글이 3위 업체인 핏비트를 21억 달러(약 2조4300억 원)에 인수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시장의 무서운 잠재력을 본 것이다. 이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뜻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기업의 디지털화정도)이 운명을 결정한다. 4차 산업혁명은 ICT(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해 제조업의 서비스업화로, 소유에서 공유로, 구매에서 이용으로, 대량생산에서 1인 맞춤형 생산이라는 변화를 가져온다.

해마다 1월이면 미국에서 CES(세계가전전시회)가 열린다. 지난해 CES에서의 자율주행차 사업자들은 안전성을 강조했다. 1년 만인 올해 초 이런 소구 포인트는 모빌리티 내에서의 즐거움이었다. 1년 사이에 자동차는 움직이는 컴퓨터(모빌리티) 소프트웨어 싸움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경쟁이 될 정도였다. 그것이 바로 ICT기술의 발전 속도이다.

신발업체는 이제 3D 프린터와 결합해 나만의 신발을 제조판매한다. 데스마(Desma)는 73년 된 독일의 기업인데 소비자가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생체분석을 통해 신발형태를 만든다. 걸리는 시간은 불과 1시간 이내다. 이제 소비자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되는 셈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앤트 파이앤셜은 대출승인을 하면 AI가 1초 만에 판단한다. 그러고도 부실채권 비중은 중국 시중은행 평균치보다 훨씬 낮다. 현재 기업가치는 우리 돈 174조에 달한다. 한국 4대 금융지주를 합친 것보다 3배쯤 높은 몸값이다. 최근 애플의 시가총액(약 1402조 원)도 코스피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약 1384조 원)을 넘어섰다. 미국 기업 하나가 한국 기업 대표팀보다 덩치가 커졌다.

카카오는 국민연금 안내문이나 자동차검사 안내문을 SNS로 보내는 전자문서사업도 하고 있다. 여기에 과태료 납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만 더하면 바로 은행이 된다. 그래서 맥켄지 보고서는 은행이 혁신을 하지 못하면 1/3은 소멸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존의 성장세가 무섭긴 하지만 미국 월마트의 매출액은 아직도 아마존의 2배이다. 하지만 기업가치는 아마존이 월마트의 2.5배이다. 월마트가 목 좋은 곳의 매장과 인력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한 반면 아마존은 AI와 로봇을 이용해 비용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요지에 많은 땅을 갖고 있는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던 ‘게임의 룰’을 이제는 오히려 부담이 되도록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차이는 불과 1.2%이다. 1.2%의 디지털혁신으로도 기업의 내일은 달라진다. 먼 이야기 같지만 자동차 백미러의 글귀는 이렇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한국인터넷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