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미친 놈’ 취급을 부쩍 자주 당한다. 심지어 김문수화(化)하는 중이냐는 소리까지 듣곤 하는데 보수화 또는 우경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내 생각에 어떤 딱지를 붙이든 상관치 않으려 하지만 종종 쏟아지는 욕설에 난감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며칠 전 다녀온 대학 민주동문회 동기 송년 회식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분분한 화제 가운데 서울시가 떠올라 나는 대략 이런 요지로 발언했다. 서울 시민이 시장은 참 잘 뽑아온 것 같다. 이명박 시장은 도시 효율화에 크게 기여했고,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은 국제도시 외관을 갖추는 데 공이 크다는 것. 박원순 시장은 도시 구석구석 생활편의성 증대와 스마트 시티로 전환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 좌중은 둔기로 맞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운동권 출신들 모임에서 이명박 오세훈을 긍정 평가한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제정신으로 그렇게 말했다.
‘미친 놈’ 소리 들을 소재는 아주 많다. ‘조국 수호, 검찰개혁’을 외치는 서초동 집회에 나가 구호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꽤 불편했다.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제에 적극 동의하지만, 조국 장관은 별로 수호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조 전 장관 일가족에게 가해지는 검찰의 혐의 대부분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첫째, 살아온 이력을 통한 심증의 확신이고 둘째, 그 어마어마한 수사를 몇 달 펼치고서도 이렇다 할 직접 증거 하나 못 내놓는 윤석열 검찰의 행태는 권력남용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조국은 억울하다. 하지만 그의 민정수석 역할이 온당했는가는 별개 문제다. 현역 검찰과 무연하게 법안이나 다듬으라는 게 그 자리였던가. 장관 임명 후 쏟아진 비난 공세가 아무리 억울했어도 열흘 내외로 장관직 후보 사퇴를 했어야 옳다. 개혁법안은 이미 의회로 넘어갔으니 굳이 장관을 해야 할 당위가 없다. 당과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억울한 사퇴를 하는 일은 어느 정권 때나 있던 일이다. 왜 석 달씩이나 끌어야 했단 말인가.
이런 의견 때문에 받은 공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공박의 말은 대개 비슷하다. 자유한국당 쪽으로 넘어가느냐는 것. 그런 의혹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지난 세월 너무나 놀라운 이탈자, 변절자들이 있어왔으니까. 뉴라이트로의 전향자들이 파장이 컸지만 실상 생계형 변신이 훨씬 많았다. 운동권과 달리 정치인의 변신은 다반사이지만, 김대중 휘하 맹장들이 우르르 박근혜 진영으로 투항하는 모습에서는 참 인생무상의 슬픈 넋두리가 나왔다. 그런 일을 겪었으니 조금만 다른 견해를 가져도 화들짝 과민반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현재 보수 우익이라 지칭되는 어떤 정당이나 세력에도 넘어갈 것 같지 않다. 한국 보수 우파 수준이 처참할 정도로 함량 미달이기 때문이다. 그쪽 주장은 도대체 들어볼 말이 없다. 그 상투적이고 억지스러운 경제 폭망설, 민부론이라고 낸 책자에 담긴 민망하게 퇴행적인 성장담론. 가장 재미있는 것은 공산주의자 문재인이 나라를 김정은에게 팔아넘기려 한다나 뭐 그런 봉숭아 학당 언어다. 극단적인 미국 숭상, 일본 경도, 중국 배척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내 생각의 변화 혹은 보수화는 지난 100년간 한국이 매우 잘해왔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세계사 유례없이 혁혁한 독립투쟁사, 고도성장기에 호응한 국민의 헌신과 저력, IMF의 강요였더라도 종래 산업기반을 과감히 붕괴시키고 IT혁명을 실현한 혁신성, 한류. 그런 시선으로 다시 보면 이승만 시기부터 현 문재인 대통령까지가 계열적으로 읽힌다. 모든 정권이 지난 시기 성과에 보태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나는 민주당에 자신들도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며 한국 사회 주류라는 점을 설득하고 싶다. 집권 야당 그만하고 진정한 주류 정치세력이 되라고도 말하고 싶다. 민족이나 국가를 부정과 극복 대상으로 여겨온 진보적 관점도 재고할 필요를 느낀다. 민족주의·국가주의가 전쟁과 파시즘을 낳았던 것은 독일 일본 전범들의 역사고 한국의 저항 민족주의와 독립국가로서 일체감은 긍정 에너지였다고 믿는다. 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미친 놈’이 되어 버렸다. 남은 생애 동안 동료였던 이들에게 욕바가지만 쓰고 살지 궁금하다.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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