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겨울이 오면 필자가 사는 제주에 자리 잡은 한라산에는 눈이 높이 쌓인다. 이때를 기다려 전국에서 설산을 만끽하려는 등산객도 모여든다. 하지만 2016~2018년 겨울에 등산객 4명이 목숨을 잃었다. 겨울 산행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는 대개 저체온증과 관련이 있다. 글자 그대로 체온이 너무 내려가는 것을 말하는데, 시베리아나 히말라야 같은 극한 추위도 아닌데 왜 일부 등산객만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을까? 바로 땀 때문이다.

그림 서상균

인간은 체온이 늘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는 항온 동물이다. 개구리나 뱀 같은 변온 동물은 체온을 유지해주는 생체 기능이 없어 체온을 올리기 위해서는 양달을, 내리기 위해서는 응달을 오가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그럴 필요는 없다. 체온이 오르면 뇌신경 작용으로 저절로 땀이 난다.

땀이 나면 피부가 물로 코팅되는 효과가 나고, 물은 체온을 빼앗아 증발하면서 체표면을 식힌다. 그래서 땀을 흘리면 시원해지는 것이 아니라 땀이 날아가면서 시원해지는 것이다. 사우나에서 땀을 흘릴 때는 시원하지 않지만, 땀 흘린 뒤 선풍기 앞에 앉으면 비로소 시원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땀을 흘리고 땀이 마르는 현상은 특히 아주 더운 여름에 체온을 조절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더워도 땀이 충분히 나기만 하면 웬만한 무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수분 부족이나 심혈관계 병으로 땀을 충분히 흘리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열사병에 걸린다.

그렇다면 겨울에는 어떨까? 겨울에 흘린 땀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추운 겨울날, A 씨는 한라산 설경을 즐기려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산행에 나서 2시간을 걸어 해발 1700ｍ 윗세오름에 도착했다. 모처럼의 등산이라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올라온 통에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찬 바람 부는 광장에 앉아 가쁜 숨도 조절하고 땀도 식히는데 이때 본인도 모르게 아주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해발 1700ｍ 정도면 해안 지역보다 기온이 적어도 10도 이상 낮다. 바람도 심하게 불 가능성이 높다. 올라오는 동안에는 근육이 열심히 일했고, 체온이 올라가니 체온을 내릴 목적으로 땀이 많이 났다. 하지만 휴식 시간이 되자 온몸을 적신 땀은 체온을 빼앗기 시작한다. 근육이 쉬므로 더는 몸을 식혀주지 않아도 되지만, 일단 배출된 땀은 마르면서 몸의 열기를 빼앗는다.

몸이 식어간다. 체온이 내려가자 체온을 올리기 위해 A 씨의 몸은 반사적으로 근육 수축을 일으켜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체온을 올리기는 역부족이다. 체온은 계속 떨어지고, 의식마저 잃는다. 생명이 아주 위독해지는 저체온증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런 위험에 안 빠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반부터 너무 무리하게 걸으면 땀이 나기 쉬우니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페이스를 유지해 천천히 몸을 덥혀야 한다. 여러 겹 옷을 입어 땀이 날 정도면 한두 개는 쉽게 벗고 걸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땀이 날 정도가 되면 틈틈이 쉬면서 걸어야 한다. 일단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은 빨리 벗는 게 좋다. 땀에 젖은 상태에서 강한 바람을 맞으면 땀이 빨리 증발하면서 체온이 빨리 떨어지므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실내에서 쉬는 것이 좋다.

부득불 실외에서 쉴 때도 덥다고 성급하게 두꺼운 겉옷을 벗어버리면 체온이 빨리 떨어지므로 겉옷은 입은 상태로 쉬어야 한다. 비 오는 날씨에 땀 배출 효과가 없는 일반 비옷을 입으면 땀이 더 많이 나 저체온증에 더 쉽게 빠지니 비옷도 기능성 소재로 된 것을 입는 것이 좋다. 그리고 건강과 체력을 고려해 악천후에 무리한 산행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겨울 산행 사고는 특히 1월에 집중되며, 50대와 60대가 취약하고, 3분의 1은 무리한 산행이 원인이라 한다. 평소 건강 관리와 철저한 대비로 이 겨울에 설산에서 아름다운 추억 만드시길 바란다.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