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형은 자기 주변에서 내가 유일하게 결혼생활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는 꽤 여러 번 들었는데, 서울에서 만났던 한 작가는 자기 주변의 결혼한 사람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거듭하여 들을수록, 어딘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다. 결혼한 사람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가족의 삶도, 일주일 정도를 들여다보면 함께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시간은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고, 반 이상이 고생과 힘겨움이며, 다투거나 시큰둥한 때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도 나의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삶이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가정생활’의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유는 그만큼 가정의 행복에 관한 언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연애다. 연애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온갖 언어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연애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순간에 대한 찬양과 의미 부여를 그저 빌려 쓰면 된다. 연인과 그저 길만 걷고, 밥이나 먹고, TV나 보아도, 그 순간은 영화 같고 소설 같다. 실제로 영화나 소설, 노랫말 속에서 그런 시간의 소중함과 가치 있음, 아름다움들이 수도 없이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연애에 관해 우리는 이미 넘칠 정도의 언어와 이미지를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결혼 혹은 가정, 육아 등에 대해서는 그런 언어나 이미지가 거의 계발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두 눈동자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아이와 셋이서 마트에 나서서 시식코너를 둘러보며 아이의 입에 포도를 집어 넣어주는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이를 일찍 재워두고 오랜만에 허락된 시간에 평온과 여유를 느끼며 몰래 맥주 마시면서 둘이서 영화 보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말하는 문학이나 영화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다. 그런 언어가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삶도 없는 것처럼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걷던 길보다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셋이서 산책하는 저녁의 느낌이 어딘지 더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며,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다소 과장된 상태로 서로를 유혹하고, 자신을 감추며, 자신의 일부만을 연출하듯 지내던 관계보다는, 가장 깊고 솔직한 부분까지 알아가며 엮이는 관계가 더 영화나 소설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느끼고 말하고 싶은 건, 이미 배웠던 영화나 소설 속 이미지나 언어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속한 현실이다.

의외로 사람은 나약해서, 자기가 속한 삶을 정말 쉽게 부정할 수 있다. 예능 속의 화려한 연예인들의 삶을 보며 이혼을 결심할 수도 있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서 이민을 떠날 수도 있으며, 소설 속 삶에 깊이 몰두한 나머지 지금의 생을 마감하려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속한 삶에 존재하는 행복들도 전혀 발견되지 못한 채, 다른 이미지들로 뒤덮여 은폐될 수 있다. 내 삶에 관한 언어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결국 남는 건 타인들에게서 빌려온 언어들뿐이고, 그런 말들을 통해 자기 삶도 생각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누군가 내 몸에 들어와 빙의해서 일주일만 살아본다면 ‘뭐야, 이건 내 삶이랑 다를 거 없잖아’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내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비해 월등하게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저 다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을 테지만,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 삶을 바라보는 이미지, 그 삶을 이해하는 언어만이 다를 뿐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이고,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역으로 삶을 만들어낸다고도 믿게 된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바꾼다. 태도가 실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삶이 어떠하든, 그 삶을 온전히 대하고자 애쓰고 있다. 모든 삶, 모든 시절에 있는 행복이나 힘겨움을 그대로 마주하고자 하고, 특히 삶이 가진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 혹은 신비로움을 무엇보다 깊이 느끼고 간직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면, 삶은 어느 순간 정말로 그러한 것으로 다가오곤 한다. 매 시절, 내가 사는 삶을, 어딘가에서 빌려오지 않은 나만의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 간다고 느끼곤 한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