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컨설팅 회사가 발표하는 세계 도시별 삶의 질 순위에서 부산은 지난해 94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수도라는 서울도 77위였다. 대한민국 도시들이 이 결과를 부끄럽게 여겨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로 대표되는 고대 도시국가 시절에는 도시가 곧 국가였으며 도시라는 테두리 안에서 개인 삶의 양식이 규정됐다. 이러한 양상은 봉건제 시기에도 유지되었고, 르네상스시대에도 메디치가의 피렌체, 베네치아 공화국 등 도시 자체의 정체성과 영향력은 여전히 강성했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근대국가 성립이 본격화된 19세기 이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도시가 국가의 부분으로 포함되면서 도시의 정체성이 후퇴하여 이제는 국가라는 범위 안에서 개인의 삶이 대부분 규정되고 도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보다 제한적으로만 남아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도 도시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이미지는 있기 마련이다. 이런 이미지를 향한 동경의 마음도 갖게 되어 그리워서, 가고 싶어서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살아간다.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벤, 뉴욕의 자유의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 등 세계 유수의 이름 있는 도시들은 대부분 그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 상징물을 가지고 있다. 물론 도시 경쟁력의 근본은 그곳의 시민에게 얼마나 살기 좋고, 일하기 좋고, 놀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동과 소비의 자유가 보편화되어 서비스수지의 중요성이 커진 현대사회에서는 멋진 상징물을 보유한 도시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를 바탕으로 삼는다. 시민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행정을 하는 사람들도 도시의 랜드마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물은 무엇일까? 기성 세대는‘용두산아~ 용두산아~’의 구성진 가락으로 떠오르는 용두산, 한국전쟁의 상흔과 재건을 향한 의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국제시장을 떠올리지만, 최근 세대들은 아마도 광안대교가 바라다보이는 해운대의 야경을 먼저 꼽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국제적으로도 통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10년 전부터 뜨거웠다. 문현금융단지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부산국제금융센터(BIFC)를 건설해 금융공공기관과 은행을 입주시키자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BIFC 주변으로는 국제금융공원을 조성하여 부산의 상징물로 만들려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고, 준비단계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일본 도쿄의 롯폰기를 방문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조율이 쉽지만은 않아서 모두가 알다시피 BIFC는 63층 빌딩 정도로 전락하였고, 그 주변 여건 또한 아직 개선해 나아가야 할 부분이 많은 게 엄연한 사실이다.

현재도 부산의 도시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실현 가능성 있는 매력적인 청사진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안대교 옆 이기대공원과 해운대 동백섬을 잇는 해상케이블카를 건설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동백섬의 자연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서 논란이 큰 상황이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광안리, 해운대의 앞바다와 지나치게 가깝게 해상케이블카를 건설하는 것은 동백섬이라는 천연의 자연경관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안을 찾아보자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기대공원부터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연결하는 근해에 해상케이블카를 건설하게 된다면 천혜의 자연환경인 동백섬을 훼손하지 않아도 된다. 광안대교와 해상케이블카의 거리도 멀어져서 해운대와 광안리로부터 보이는 바다 경관의 훼손도 크게 줄일 수 있게 된다. 현재 세계 최장인 베트남의 해상케이블카 길이는 7899.9m이지만, 이기대와 달맞이공원을 연결할 경우 8㎞ 이상인 세계 최장 해상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다.

달맞이고개에서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백섬 그리고 그 뒤로 자리 잡은 마천루 빌딩을 조망하면서 이기대를 향해 하늘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낭만이 흐르지 않겠는가!

해운대 달맞이고개와 이기대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해상케이블카는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 그리고 아시아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상징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