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누구인가. 사전적으로는 ‘회사의 책임자’이고, 근로계약서에는 갑(甲)이며, 근로자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고, 월급을 주는 계약 당사자다. 그런데 근래에는 직원 월급도 마음대로 못 정하고, 일도 자기가 시키는 게 아니고, 심지어 채용이나 해고도 마음대로 하기 힘든 사장 아닌 사장, 을(乙) 사장님이 많다. 바로 사내하청 또는 파견업체 사장이다. 이런 을 사장님에겐 월급이 적다거나 산재를 당했다거나, 왜 해고되느냐 따지기도 힘들다. 아무 결정권도 없는 을 사장에게는 말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을 사장님 밑의 근로자는 같이 일하는 원청 직원보다 월급은 절반이고, 귀찮고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해야 하고, 잘릴 땐 먼저 잘린다. 그래서 희망사항은 늘 원청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로 부르는 이유다.

그림 서상균

을 사장님은 사실 사장이 아니라 회사 부장, 반장 같은 중간관리자와 다를 바 없다. 중간에서 진짜 사장을 위해 부서 근로자들을 관리하면서 돈을 받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헌법과 근로기준법은 진짜 사장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있고, 진짜 사장과 근로자 사이에서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에 이익을 취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9조, 제107조.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전문기술 등이 필요한 직종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2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파견법 제5조, 제6조). 그나마도 허용되는 업무가 아니거나 2년을 초과하여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진짜 사장은 그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파견법 제6조의2).

노동법이 진짜 사장에 의한 직접 고용을 강제하는 이유는 헌법에 따라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진짜 사장에게 직접 고용되지 않은 비정규직들은 을 사장으로부터 더 쉽게 잘리고, 월급은 더 낮고, 심지어 제때 임금을 못 받거나 떼이는 경우도 많아진다. 진짜 사장은 노동법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어서 좋고, 을 사장은 중간에 이익을 취할 수 있어 좋겠지만, 그 아래 비정규직 근로자는 을에서 병(丙)으로, 또 정(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노동법이 이렇게 다단계(?) 고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에도 왜 현실에는 을 사장이 많을까. 바로 사장들이 이런 다단계 근로계약을 ‘도급’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을 사장 업체에 채용되어 원청에서 일하게 하는 계약이라면 분명히 현행법상 근로자 파견계약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원청과 사내하청 업체는 이를 ‘도급계약’이라고 부르면서 파견근로가 아니라고 박박 우겨대는 것이다. 법대로 하자면 전문기술 등이 필요한 특별한 업종이 아닌 다음에야 파견근로는 불법이고, 진짜 사장이 해당 비정규직들을 전부 직접 고용해야만 하다 보니 그러는 것이다. 사람은 써야겠고, 노동법상 책임은 지고 싶지 않으니까.

2년 전 노동 존중을 내세운 현 정부가 들어서자 불법파견 근로자인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를 원청인 파리바게뜨(SPC)가 직접 고용하라는 노동부 시정명령이 있어 사회적 큰 이슈가 됐다.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만드는 직원들의 진짜 사장이 파리바게뜨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노동법에 따라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었다. 그 후 한동안 우리 사회에는 불법파견과 직접 고용 문제로 떠들썩했지만, 최근 한국도로공사 수납원들 사건을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간 진짜 사장 한국도로공사는 을 사장을 내세워 노동법이 금지하는 불법파견근로를 해왔고, 이에 최근 대법원은 ‘한국도로공사의 요금 수납원들은 불법파견근로자가 맞다’며 진짜 사장인 한국도로공사에 법에 따라 직접 고용하라고 명했다. 그런데도 한국도로공사는 거부했다. 오히려 수납원 근로자들이 “떼를 쓴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했다. 사실상 국가기관이나 다름없는 공기업이 대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국민을 떼쟁이로 만드는 왜곡 선동을 한다.

법치국가의 정부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