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환경단체의 ‘기후비상행동’ 모임에서 어느 고교생이 기막힌 표현을 썼다. ‘우리는 멸종위기 청소년’이라는 거다. 기후 위기로 인류도 멸종할 수 있으니, 현재 젊은 세대가 어쩌면 그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뜻에서다. 하기야 지금과 같이 온실가스를 계속 내뿜으면, 지구 기온 상승은 제어불능이 되고 환경은 파국에 빠진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성세대는 대응에 미온적이라 젊은층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스웨덴의 ‘환경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필두로 국내외 젊은층이 기후문제를 절규하듯 외치고 저항운동에 나서는 이유다.

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하위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실태조사를 보면, 초·중·고 학생들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6.57점이다. OECD 27개 회원국의 평균 7.6점보다도 뒤처진다. 모두 7개 영역 가운데서도 현재 생활수준과 미래 안정성의 점수가 가장 낮게 나왔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격차가 심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빈곤 가정과 비(非)빈곤 가정의 점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는 게 예사롭지 않다. 즉 부와 가난의 대 물림이다. 이는 사회적 차별이나 기회 박탈로도 이어진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불공정에 민감하고 공정에 목이 마르는 게 당연하다.

베스트셀러인 ‘90년대생이 온다’의 지은이가 말한 것처럼 2030세대는 공정을 우선 가치로 꼽는다. 부당함을 참지 않고 정의·공정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 물음과 요구는 앞으로 훨씬 더 커지고 많아질 터다. 따라서 이들의 가치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게 옳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적 대로, 기성세대 특히 정치권은 이들의 물음에 언제든지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조국 사태’에 대학생들이 촛불을 든 것도 다르지 않다. 좌우 진영논리나 편들기가 아니라 불공정에 분노하는 것이다. ‘흙수저는 학사경고, 금수저는 격려 장학’ ‘평등 정의 외치더니, 결과 정의 어디갔나’ 같은 구호가 그걸 말해준다. 지난 4일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나온 대학원생은 조국 사태를 보며 무기력에 빠졌다고 한다. “취업도 학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청하지도 않은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에 기가 막히고, 상식과 합리적 판단이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가 노력해도 무엇하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이른바 ‘엄마·아빠 찬스’ 없는 젊은층의 한탄으로 들린다. 비단 조국 사태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서 고위층 자녀의 입시·채용 비리 의혹은 고질병이다.

근래 여야 정치권이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자녀 입시비리에 대한 전수조사 추진이나 관련 특별법 제정 운운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조국 사태가 없었다면 과연 그런 움직임이 나왔겠나 싶다.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정략적 차원이란 인상이 다분하고, 그걸 실행할 의지와 효과도 의문스럽다. 그래서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대입 부정 학생과 그 학부모 1400여 명단을 공개해 큰 파장이 일었다. 그 중에는 전 문교부 장관과 국회의원, 교수 등 지도층 인사가 상당수 포함되었다. 하지만 명단에 600여 명이 축소 발표됐다는 의혹으로 빛이 바랬고, 그 후로도 입시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요즘 청년층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란 말을 듣는다. 그럼에도 입시와 취업 등에서 가혹한 경쟁에 내몰린다. 조국 장관은 2010년 펴낸 ‘진보집권플랜’에서 이를 한국사회의 경쟁 과잉·중독이라 부르고, 그 경쟁이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자기는 1차선을 씽씽 달리고, 다른 사람은 1차선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은 경쟁의 이름으로 특권을 포장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구성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고 같은 출발선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랬던 조 장관의 자녀 문제가 터지니 젊은층에 상실감을 준 꼴이 됐다.

청년들은 작금의 정국에 더 허탈하다. 정치권이 청년의 일자리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목소리, 미래 불안, 기후 위기감 등을 풀어주기 위해 제도 개선과 대책에 매진해도 부족할 판에 양 극단의 진영싸움에 빠져 있으니 말이다. 기후위기만 해도 미래 세대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그와 관련해 국가·지역의 발전전략을 기후위기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새롭게 짜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현재의 20대 청년은 곧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됩니다. 이들의 불만과 요청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해결하지 못하면 이들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폭력적 방식에 호소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못하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조 장관이 ‘진보집권플랜’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그렇듯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는 사회, 청년의 요구에 침묵하는 사회는 그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