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재단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10년 전 부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문화재단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설치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관(官)이 문화예술 행정을 일방적으로 쥐락펴락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민간전문가 집단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해 민과 관을 연결하는 ‘문화협치’의 소임을 맡기자고 해서 생긴 게 문화재단이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완전한 문화협치의 길은 멀고, 문화재단에 주어진 독립성과 자율성은 미덥지 못하다.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관의 심부름센터 정도로나 여기는 공무원과 가끔 마주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문화재단 구성원의 처지로선 “그러는 너희는 그에 값하는 전문성과 치열성을 보여 왔느냐”는 질문에 뜨끔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부산문화재단이 지난 10년 동안 이룬 성과가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재단 사업예산이 7배, 예술창작지원금이 3배나 늘어나는 양적 성장을 이뤘고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부산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의 진정한 요람이 되려면 과제가 산적하다는 게 CEO로서의 솔직한 고백이다. 해내야 할 숱한 일 중에 하나만 먼저 들라면 나는 ‘정책 입안 능력의 확대’를 꼽겠다. 부산문화재단과 지역 문화예술계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해내야 할지를 보여줄 설계도를 그려내는 능력 말이다.

그래서 부산문화재단은 최근 정책연구센터를 설립한데 이어 창립 10주년을 맞은 엊그제 ‘부산문화재단 비전 2030’을 선포했다. 급변하는 문화 환경 속에서 부산 문화의 향후 10년을 선도적으로 개척해 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내 삶과 동행하는 예술, 함께 행복한 문화도시 부산’을 화두로 내세웠다. 그리고 ‘시민과 함께, 예술인과 함께, 문화예술로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미션 아래 5개의 전략과제, 20개의 추진과제, 65개의 실천과제를 담았다.

그 핵심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장 먼저 꼽을 것이 ‘문화를 통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다. 먹고살 만한 세상이 왔다는데도 사람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진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환경재앙이 현실로 다가오는데 현대인들은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지 않나. 그래서 문화와 예술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에게 힘과 위안을 주고, 문명적 위기에 경고와 자성의 목소리를 던지고, 현대인들에게 정서적 행복감을 주겠다는 거다. 부산문화재단이 앞장서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다짐인 거다.

두 번째로는 ‘시민 모두가 예술인인 시대’를 여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전문 예술인들의 몫만은 아니다. 시민들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만의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생활 문화의 진흥’에 앞장서겠다는 거다.

마지막으로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꼽을 수 있겠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상상력과 감성을 무기로 한 콘텐츠가 아닌가. 그 콘텐츠의 원천기술(?)은 문화 예술이 제공한다. 그래서 청년 세대의 실험성과 도전의식을 일깨울 참신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각오다.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떠나는 청년 문화예술인을 붙잡을 비책이기도 할 터.

그 밖에도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일본에 쏠려 있는 국제교류도 중국, 러시아를 아우르는 아시아권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남북의 화해협력 시대를 맞아 ‘부산발(發) 남북문화교류 항로’의 개척도 빠트릴 수 없다. 문화예술인의 생활 안전망 마련, 문화정보의 접근성 강화, 문화다양성 확산 등도 마찬가지.

이 65개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게 벅차긴 하다. 향후 10년간 투자예산을 2725억 원으로 잡았는데 재원 마련에도 머리를 싸매야 한다. ‘비전 2030’이 일회성 발표문으로 그쳐 캐비닛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게 하려면 재단 구성원의 비상한 노력과 함께 부산시와 시의회의 적극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시민, 문화예술인들의 관심과 성원 그리고 질책을 지렛대 삼아 부산문화재단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갈 작정이다. 10년 후 ’함께 행복한 문화도시 부산‘의 파노라마를 머리에 그리면서.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