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의 김지혜 교수가 쓴 ‘선량한 차별주의자’이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서 차별을 자행하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악의는 없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표현들이나 제도, 문화가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100여 명의 14~19세 청소년에게 평소 자신이 겪은 차별 경험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각양각색의 응답이 쏟아졌다.
‘키가 작고 마른 편이라 급식실에서 밥을 적게 준다’ ‘여자라서 급식을 적게 주는 것 같아, 더 달라고 하면 탐욕스러운 사람처럼 본다’ ‘일본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친구들이 쪽바리라고 놀린다’ ‘부산 사투리를 쓴다고 귀여운 사람 취급당하거나 촌스럽다고 지적당한다’ ‘남자라서 축구를 잘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등이다.
외모, 성별, 성적, 나이, 출신지 등에 따라서 정말 다양하게 무시당했고 상처 입었다. 문제는 상처를 준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서로가 쓴 차별의 항목을 보여주고 내가 미처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쓰라고 했더니 그것 또한 자신이 당한 차별의 사례 숫자와 비슷하거나 그 수가 더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차별이, 나에게는 특권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책의 저자가 말하듯, 사람들은 대체로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라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차별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심각한 폭력이 행사된다. 차별받는 사람들은 사회의 약자일 수밖에 없고,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힘이 더 센 사람이 차별이 없다고, 나에게 그런 악의가 없다고 말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고통은 없는 것이 되고,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결코 사회가 정의로워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 순간 필요하다. 도덕의 범주가 어디까지 가 닿았는지, 그 안에서 소수자는 누구인지, 그 범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존재는 없는지 살피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민주주의 공론의 장이라 불렸던 아테네의 아고라는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노예 여성 외국인은 배제되었고, 인류의 역사는 그 사람들을 다시 포함하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다수의 의견에 따르되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너무나 간단한 원칙은 민주주의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 되도록 한다.
많은 사회적 이슈도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성 권리 운동, 이주민이나 난민을 대하는 태도, 장애인이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 등이다.
지금 당장은 익숙했던 것에서 조금 달라지면 불편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질서의 사회를 상상해야만 민주주의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고, 사회 정의를 이룰 수 있다. 특정인에게 더 많은 혜택과 권리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누가 소수이고 다수인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누가 약자이고 권력자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소수이고 피해자이며 약자인 사람을 끌어안을 때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일 관계도 이렇게 바라봐야 한다. 일본 정부도 악한 마음을 가진 게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전쟁은 나쁜 것이고, 군대가 민간인을 유린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잘못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들 역시 ‘선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차별주의자고, 권력자이며,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일본에 필요한 것은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이고, 민주주의의 정신을 발휘하는 일이다. 지금 당장 일본의 정부가 그럴 능력이 없다면, 일본의 젊은 세대가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연대해야 한다.
우리 역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나아가 세계 시민으로서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 갈등의 역사를 끌고 가야 할 것이다. 마치 100년 전 3·1운동을 이끌었던 우리 선조들처럼 그리고 이 세계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이기고 도덕의 범주를 넓혔던 수많은 노예 흑인 여성 이주민처럼 말이다.
인디고잉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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